카팔루아 플랜테이션 코스
카팔루아 플랜테이션 코스. /골프 위크

① 사라진 개막전, 주인 없는 지상낙원

카팔루아 리조트 플랜테이션 코스 18번 홀 티잉 구역에 서면, 하와이가 가진 모든 매력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태평양의 파도가 요동치고, 운이 좋으면 수면 위로 솟구치는 고래의 유연한 몸짓도 볼 수 있다. 화산 지형의 능선을 따라 굽이치는 페어웨이는 무역풍에 흔들리는 쿡 파인 나무들과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이곳은 매년 1월, PGA 투어의 새해를 알리는 ‘더 센트리(The Sentry)’가 열리던 약속의 땅이었다. 1999년부터 이어온 이 전통은 미국 본토의 눈 덮인 겨울에 갇힌 골프 팬들에게는 유일한 탈출구이자 대리 만족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2026년 1월, 이 풍경에서 주인공인 ‘프로 선수’들이 사라졌다.

지난해 9월 10일, PGA 투어는 가뭄과 물 공급 분쟁을 이유로 대회 전격 취소를 발표했다. 하지만 현재 카팔루아의 모습은 투어의 결정과는 사뭇 다르다. 지난주에도 150명의 일반 골퍼가 475달러를 내고 이 코스를 플레이했고, 원래 최종 라운드가 열렸어야 할 이번 주 티시트는 만석에 가깝다. 중계방송을 기다리던 팬들이 허탈함을 느끼는 사이, 마우이 현지에서는 ‘일반 골퍼’들이 투어급 코스를 여유롭게 누리고 있는 것이다.

② 투어의 ‘합리적 포기’와 카팔루아의 ‘필사적 복구’

물론 PGA 투어의 결정을 단순히 ‘성급함’으로 치부하기엔 그 나름의 논리도 견고하다. 투어 본부는 수개월 전 결정을 내려야 하는 조직이다. 당시 마우이는 가뭄 4단계 제한으로 관개가 전면 중단된 상태였고, 물 공급업체와의 법적 분쟁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총상금 2000만 달러 규모의 PGA투어 시그니처 이벤트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대회 직전에 코스가 ‘갈색 벌판’으로 남을 위험을 감수하기란 비즈니스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투어의 입장에선 취소가 가장 ‘안전하고 합리적인’ 선택지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카팔루아의 대처는 투어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미국의 전문매체 골프위크에 따르면 알렉스 나카지마 총지배인을 필두로 한 관리팀은 9월 초 코스를 전면 폐쇄하는 배수의 진을 쳤다. 인근 베이 코스에 줄 물까지 모두 플랜테이션 코스로 몰아주는 과감한 ‘선택과 집중’을 감행했다. 2019년 리노베이션 당시 식재한 가뭄 저항성 버뮤다그래스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 결과, 코스는 불과 두 달 만인 11월 10일 기적처럼 재개장했다. 최근 이곳을 플레이한 이들은 “흠 하나 없는 완벽함”이라며 찬사를 보낸다. 5000만 달러에 달하는 지역 경제 파급 효과를 생각하면, 카팔루아의 이 빠른 회복력은 투어의 ‘안전한 선택’을 더욱 뼈아프게 만든다.

18번홀

③ ‘조금만 더 지켜봤더라면’… 유연함이 아쉬운 이유

이 지점에서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PGA 투어가 조금만 더 유연하게 상황을 지켜보며 최종 판단을 늦췄다면 어땠을까.

PGA 투어는 단순한 이벤트 회사가 아니다. 오랜 전통과 지역 사회와의 유대를 먹고 사는 스포츠 기구다. 27년간 새해의 시작을 함께해온 하와이 마우이와의 신의를 생각했다면, 단칼에 취소를 결정하기보다 카팔루아의 복구 의지를 믿고 ‘조건부 개최’나 ‘최종 결정 유예’ 같은 완충 지대를 고민했어야 했다.

지금 카팔루아의 초록빛 페어웨이는 투어의 비즈니스 논리가 ‘현장의 생명력’을 과소평가했음을 묵묵히 증명하고 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수 있으나, 투어 본부의 서류 뭉치 속 데이터보다 카팔루아 관리인들의 구슬땀이 훨씬 강력했다는 뜻이다.

더 큰 우려는 이번 사태가 하와이 골프를 투어의 장기 계획에서 밀어내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음 주 오아후에서 열릴 ‘소니 오픈’ 역시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하와이는 더 이상 당연한 개최지가 아니라, 환경적 지속 가능성과 효율성을 끊임없이 검증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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