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코올과 약물 중독, 잇따른 수술로 만신창이나 다름없던 40대 골퍼가 기적 같은 역전승을 거두고는 네 살배기 딸을 안고 흐느꼈다. 할리우드 영화 ‘로키’에서 로키 발보아가 투혼을 불사르고 연인을 포옹하는 장면보다 더 극적이었다.
사상 가장 위대한 스포츠 드라마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한 앤서니 김의 부활이 2026년 2월 15일 호주 애들레이드 하늘을 물들였다. 5795일. 교포 선수 앤서니 김(41·미국)이 다시 우승컵을 들어 올리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한때 ‘타이거 우즈의 유일한 대항마’로 불렸던 천재가 무려 16년의 침묵을 깨고 돌아와 세계 최강자들을 꺾고 정상에 섰다. 단순한 우승을 넘어 인생의 가장 비참한 심연을 통과한 한 인간의 위대한 승리로 남게 되었다.

0.1%의 확률을 뚫은 9언더파의 기적
앤서니 김은 15일 호주 애들레이드의 그레인지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LIV 골프 애들레이드(총상금 3000만달러) 최종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9개를 몰아치며 9언더파 63타를 기록했다. 최종 합계 23언더파 265타를 기록한 앤서니 김은 2위 욘 람(스페인)을 3타 차로 꺾고 2010년 4월 PGA(미국프로골프) 투어 휴스턴 오픈 이후 약 16년 만에 다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PGA 투어 통산 3승의 앤서니 김은 2012년 골프계에서 갑자기 사라져 각종 풍문이 떠도는 가운데 12년간 은둔 생활을 하다 2024년 LIV 골프에 전격 합류했다. LIV 골프 합류 이후 이전까지는 단 한 번도 20위 이내에 들지 못했다. 이 대회 전까지 최고 성적은 2026시즌 개막전인 리야드 대회의 공동 22위였다. 이번 대회에서도 3라운드까지 공동 선두를 달린 욘 람과 브라이슨 디섐보(미국)에 5타 뒤진 3위여서 역전 가능성이 크지 않았다. 그의 우승 확률은 대회 공식 분석 시스템에 의해 단 0.1%로 계산되었다.

하지만 앤서니 김은 이날 무결점 플레이를 선보이며 역전 드라마를 썼다. 나란히 메이저 대회 우승 경험을 지닌 람과 디섐보와 접전을 벌이는 압박감 속에서도 전성기 시절의 날카로운 아이언 샷과 대담한 퍼트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전반에 4개의 버디를 낚으며 우승 경쟁에 뛰어든 앤서니 김은 12번 홀부터 15번 홀까지 ‘4연속 버디’를 잡아내며 3타 차 선두로 나섰다. 람이 16번 홀(파4) 버디로 2타 차로 따라붙자, 앤서니 김은 곧바로 17번 홀(파4) 약 4.5m 버디 퍼트를 넣고 3타 차를 유지하며 승기를 굳혔다. 마지막 18번 홀(파4) 파를 지킨 뒤 환호한 앤서니 김은 그린 위로 달려온 아내, 딸과 포옹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앤서니 김은 개인전 우승 상금 400만달러와 단체전 3위 상금의 25%인 22만5000달러를 더해 총 **422만5000달러(약 61억원)**를 받았다.
12년의 암흑기: ‘독사’들과의 전쟁, 그리고 중독
이번 우승이 전 세계 스포츠계를 전율케 한 이유는 그의 지난 12년이 ‘완전한 어둠’이었기 때문이다. 2012년 아킬레스건 부상 이후 종적을 감췄던 그는 그동안 수많은 수술과 재활, 그리고 중독의 늪에서 사투를 벌였다.
그는 2024년 LIV를 통해 골프에 복귀한 뒤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지난 12년간의 일을 토로했다. 그는 “어깨, 손, 척추 융합술 등 몸에 하도 금속 조각이 많이 박혀 있어 공항 검색대에서 소리가 날 정도였다”고 고백했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한 것은 정신적 황폐함이었다. 전성기 시절 그의 주변에는 그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독사(Snakes)’ 같은 사기꾼들이 득실거렸고, 사람에 대한 환멸을 느낀 그는 스스로를 집 안에 가뒀다고 했다. 술과 약물에 의존하며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고 회상할 만큼 그의 삶은 벼랑 끝에 서 있었다. 골프채는커녕 TV로 골프 중계조차 보지 않았던 그가 다시 필드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활의 원동력: “가족, 그리고 금주 3주년”
무너진 천재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가족의 사랑이었다. 골프를 전혀 몰랐던 아내 에밀리가 골프를 배워보고 싶어 했고, 아내와 함께 골프장을 찾으며 앤서니 김은 잊고 살았던 골프에 다시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딸 벨라였다. 앤서니 김은 “내 딸에게 포기했던 아빠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우승 직후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이 내게 재능을 주셨고, 가족을 위해 싸우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 외에 그 누구도 나를 믿어줄 필요는 없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특히 이번 우승은 그가 금주 3주년(2026년 2월 20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거둔 성과라 더욱 뜻깊다. 중독의 사슬을 끊어내고 맑은 정신으로 필드에 선 그는 과거의 ‘악동’ 이미지를 벗고 성숙한 아버지이자 진정한 프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현재 847위인 그의 세계 랭킹은 이번 대회 우승 포인트(약 23점)를 통해 200위권으로 수직 상승할 전망이다. 2024년 복귀 당시 4221위였던 점을 감안하면 경이로운 상승 폭이다. 15년 10개월 만의 우승으로, 현대 골프 역사상 가장 긴 우승 공백을 극복한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되게 됐다.
벤 호건의 교통사고 극복 우승, 타이거 우즈의 2019년 마스터스 우승 등 스포츠 역사에는 수많은 부활극이 존재한다. 하지만 12년이라는 시간을 완전히 떠나 있다가 신체적·정신적 한계를 모두 극복하고 세계 최정상급 리그에서 우승한 앤서니 김의 사례는 독보적이다. LIV 골프의 4Aces GC 캡틴 더스틴 존슨은 그를 팀원으로 영입하며 “그의 재능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고 치켜세웠고, 준우승을 차지한 욘 람 역시 “그의 복귀와 우승은 골프계를 위해 정말 멋진 일”이라며 진심 어린 축하를 보냈다. 이제 앤서니 김은 ‘비운의 천재’에서 고통받는 많은 이들에게 “당신도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의 아이콘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