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향, 9년의 기다림, 그리고 인간 승리’… 어깨 부상과 강풍, 더블보기 악몽 딛고 일궈낸 감동의 우승
“그만두지 않기를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는 웃는 이미향은 맹목적일 정도로 순수한 열정이 가져오는 감동을 선사했다.
2026년 3월 8일, 중국 하이난성 젠레이크 블루베이 골프코스(파72)에서 열린 블루베이 LPGA 최종 라운드는 한 편의 극적인 드라마이자, 인간의 인내심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묵직한 서사시였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베테랑 이미향(32)은 이날 최종 합계 11언더파 277타를 기록하며, 2위 장웨이웨이(중국·10언더파 278타)를 단 한 타 차로 짜릿하게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2017년 7월 레이디스 스코티시 오픈 우승 이후 무려 8년 8개월, 약 9년 만에 들어 올린 감격스러운 LPGA 투어 통산 3승째이자 프로 통산 5승째였다.

뼈를 깎는 어깨 통증을 안고 치른 투혼의 라운드 이번 우승이 골프 팬들의 가슴을 유독 뭉클하게 만드는 이유는 그녀가 직면해야 했던 혹독한 신체적 시련 때문이다. 이미향은 지난해 가을부터 이어진 심각한 어깨 부상으로 인해 정상적인 스윙조차 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부상의 여파가 너무 커서 지난겨울에는 동계 훈련조차 소화하지 못했고, 대회 개막을 불과 한 달 앞둔 2월 1일에야 겨우 다시 골프채를 잡고 연습을 시작했을 정도였다.
대회 기간 내내 그녀를 가장 괴롭힌 것은 코스의 난도가 아닌, 어깨를 파고드는 극심한 통증이었다. 밤마다 밀려오는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루기조차 어려웠던 이미향은 3라운드를 마친 뒤 언론 인터뷰에서 “약 없이는 잠을 잘 수 없다. 내일도 무조건 버텨야 한다”고 털어놓으며 투혼을 불태웠다. 매 샷을 할 때마다 찾아오는 어깨의 고통을 오직 우승을 향한 집념과 끈기 하나로 억누르며 최종 라운드 출발선에 섰다.

더블보기 2개와 매서운 강풍, 찾아온 최악의 위기 3타 차 단독 선두로 챔피언 조에서 출발한 최종 4라운드, 이미향의 앞에는 거센 강풍과 샷 난조라는 또 다른 거대한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작은 순조로운 듯 보였다. 까다로운 1번 홀(파4)에서 감각적으로 핀을 공략하며 기분 좋은 버디를 낚아내며 쾌조의 출발을 알렸다.
그러나 이내 강하게 불어닥친 바람과 선두로서의 압박감 속에 경기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2번 홀(파4)에서 보기를 범하며 모멘텀을 잃었고, 이어진 5번 홀(파4)에서는 치명적인 더블 보기를 기록하며 타수를 크게 잃고 말았다. 위기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7번 홀(파3)에서 어프로치 실수로 다시 보기를 헌납한 그녀는 8번 홀(파5)에서 버디로 만회하며 한숨을 돌리는 듯했으나, 전반의 마지막인 9번 홀(파4)에서 또다시 샷 실수가 겹치며 두 번째 더블 보기를 범하고 말았다.
전반 9개 홀에서만 더블 보기 2개와 보기 2개, 버디 2개를 묶어 무려 4타(40타)를 잃은 뼈아픈 부진이었다. 어느새 3타 차의 리드는 사라졌고, 동타를 이룬 장웨이웨이 등 추격자들에게 우승 트로피를 내어줄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포기를 모르는 인내와 캐디의 굳건한 믿음 모든 악조건이 이미향을 주저앉히려 하고 있었다. 그녀 스스로도 당시를 회상하며 “1번 홀에서 버디를 잡았지만 전반에 더블 보기를 두 개나 범하고 4오버파로 마치면서 속으로는 거의 포기할 뻔했다”며 짙은 아쉬움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하지만 그 깊은 절망의 늪에서 이미향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다름 아닌 캐디의 굳건한 믿음과 스스로의 끈기였다. 이미향은 “캐디가 내내 ‘계속 싸우자, 포기하지 말고 싸우자(keep fighting, fighting)’라고 끊임없이 격려해 주었다. 나 역시 스스로 무너지지 않으려 혼신을 다해 버텼고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음을 다잡고 후반 라운드에 돌입한 이미향은 완전히 다른 기세를 뿜어냈다. 전반의 실수를 만회하듯, 가장 길고 난도가 높은 파4 10번 홀에서 절묘하게 그린의 경사를 읽어내는 날카로운 두 번째 샷으로 귀중한 버디를 낚아내며 분위기를 완벽하게 반전시켰다. 이어 13번 홀(파4)에서도 다시 한번 타수를 줄이며 중국의 장웨이웨이와 팽팽한 공동 선두 경쟁을 이어갔다.

운명의 17, 18번 홀: 상상력을 동원한 위기관리와 결정적 한 방 이미향은 끈질긴 추격전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리더보드를 계속 지켜본 것이 오히려 큰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장웨이웨이와 다케다 리오가 경기를 잘 풀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우승을 위해 버디를 한두 개 더 잡아야 한다는 사실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대망의 우승 향방을 가른 결정적인 승부처는 17번 홀(파4)과 18번 홀(파5)이었다. 1타 차 피 말리는 접전이 펼쳐지던 17번 홀, 이미향의 두 번째 샷이 그린 앞 언덕을 다 넘지 못하고 흘러내리는 핀치에 몰렸다. 자칫 타수를 잃고 우승권에서 멀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미향은 특유의 상상력과 과감하고 간결한 스트로크로 기적 같은 파 세이브 퍼트를 컵에 떨구며 리드를 굳건히 지켜냈다.
운명의 마지막 18번 홀. 장웨이웨이가 먼저 10언더파로 경기를 마쳐 클럽하우스 리더로 대기하는 상황에서, 우승을 위해서는 버디가 반드시 필요했다. 캐디는 마지막 순간까지 “버디를 할 수 있다”며 확신을 심어주었고, 이미향은 자신의 세 번째 웨지 샷을 핀 바로 앞까지 정확하게 배달시켰다. 홀에 반쯤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을 만큼 완벽한 샷이었고, 이미향은 가볍게 탭인 버디를 성공시키며 길고 길었던 승부에 화려한 마침표를 찍었다.
눈물의 인터뷰 “포기하지 않은 스스로가 정말 자랑스럽다” 마지막 챔피언 퍼트가 홀컵으로 사라지는 순간, 9년에 가까운 인고의 세월이 스쳐 지나간 듯 이미향의 얼굴에는 벅찬 감동이 번졌다. 누구보다 기쁘게 뛰어온 리우위 선수를 비롯해, 김아림, 최운정 등 투어 동료들이 그린으로 쏟아져 나와 아낌없는 축하를 건넸다.
이어진 우승자 인터뷰에서 이미향은 참아왔던 눈물을 글썽이며 벅찬 소회를 털어놓았다. “우승이라는 감정을 너무 오래 잊고 지냈기에, 정말이지 다시 한번 꼭 우승하고 싶었다. 캐디와 함께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경기에 임했다”고 입을 연 그녀는, “오늘 아침에는 나 스스로를 굳게 믿었지만 역시 막상 경기에 들어가니 긴장했던 것 같다. 전반에 더블 보기가 두 번이나 나오면서 심리적으로 무척 힘들었고 마음속의 기복도 심했다”고 가장 험난했던 전반전의 위기를 돌아봤다.
하지만 이내 “후반에 계속해서 나 자신과 싸워 나가면서 보기 없이 버디만 3개를 기록했다. 이렇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내 자신이 정말로 자랑스럽다”고 감격스러워했다. 18번 홀의 극적인 버디 순간에 대해서는 “막판에도 여전히 긴장했지만, 퍼트가 정말 잘 떨어져 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고 노력했고, 마지막 홀엔 약간의 운도 따라준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우승이 믿어지지 않고 손이 떨린다”며 솔직한 심정을 고백했다.
모두에게 감사를 돌린 챔피언의 품격, 그리고 끝나지 않은 투혼 2014년 첫 승, 2017년 스코틀랜드 오픈 우승으로 비상했던 그녀는 2021년과 2022년 상금 랭킹 100위 밖으로 밀려나는 뼈아픈 슬럼프를 겪었다. 상금 순위를 다시 끌어올리며 부활을 알리던 찰나 찾아온 어깨 부상은 잔인한 시련이었지만, 이미향은 결코 주저앉지 않았다.
기자회견 말미, 그녀는 자신을 지탱해 준 이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성적이 나지 않아 정말 힘든 시기를 겪었다. 아버지와 캐디, 코치님,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투어 동료들도 늘 내게 ‘할 수 있다’며 긍정적인 말을 해줬다. 이번 우승은 결코 나 혼자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준 것”이라며 영광을 돌렸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이 우승이 얼마나 처절한 신체적 투혼의 결과인지를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내일 다시 병원에 가 볼 예정이다.”
이미향의 이번 우승은 단순한 골프 대회 1승을 넘어서는 묵직한 울림을 준다. 찢어질 듯한 부상의 고통, 거센 강풍, 그리고 치명적인 심리적 붕괴 위기마저 불굴의 인내심으로 이겨낸 완벽한 ‘인간 승리’다. 무려 3170여 일을 버텨내며 증명한 이미향의 빛나는 투혼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진한 감동으로 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