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지가 다시 세계 무대의 중심으로 돌아오고 있다. 비록 11년 만의 US 여자오픈 정상 탈환에는 실패했지만, 오랜 슬럼프를 딛고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며 제2의 전성기에 다가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인지는 9일 발표된 여자골프 세계랭킹에서 평균 2.02점을 기록해 지난주 97위에서 54계단 상승한 43위에 올랐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퍼시픽 팰리세이즈의 리비에라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제81회 US 여자오픈에서 단독 4위를 차지하며 세계랭킹 포인트 30점을 획득한 결과다.
총점은 70.65점으로 늘어났다. 전인지가 세계랭킹 50위 안에 복귀한 것은 2024년 3월 이후 약 2년 3개월 만이다.
세계랭킹 상승 폭만 봐도 이번 US 여자오픈이 전인지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대회였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최종 라운드에서 1언더파 70타를 기록해 최종합계 6언더파 278타로 대회를 마쳤다. 최종일 한때 단독 선두에 오르며 우승 경쟁을 펼쳤고, 마지막까지 메이저 챔피언다운 존재감을 과시했다.
전인지는 이미 한국 여자골프를 대표하는 스타다. 2015년 US 여자오픈에서 비회원 자격으로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2016년 에비앙 챔피언십, 2022년 KPMG 여자 PGA 챔피언십까지 석권하며 메이저 3승을 거뒀다. 한때 세계랭킹 3위까지 오르며 여자 골프 최정상급 선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2022년 메이저 우승 이후 예상치 못한 긴 침체기가 찾아왔다. 부상과 컨디션 난조, 심리적 부담이 겹치면서 성적이 급격히 하락했다. 2023년 이후 3년 가까운 기간 동안 출전한 수십 개 대회에서 단 한 차례만 톱10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세계랭킹도 급락했다. 지난해 4월에는 247위까지 떨어지며 선수 생활 최대 위기를 맞았다. LPGA 투어 CME 포인트 랭킹 역시 하락해 올 시즌에는 풀시드가 아닌 부분 시드 신분으로 시즌을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전인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코칭 스태프를 새롭게 구성하고 스윙을 근본적으로 점검했다. 비거리를 늘리기 위해 무리하게 힘을 쓰던 메커니즘을 버리고 보다 자연스럽고 효율적인 스윙 궤도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기술적인 변화뿐 아니라 체력과 정신적인 안정 회복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 결과가 올해 들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US 여자오픈에서는 과거 전성기 시절의 강점이었던 정교한 아이언 샷과 안정적인 경기 운영 능력이 되살아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종일 우승 경쟁 과정에서 몇 차례 아쉬운 실수가 나오기는 했지만, 세계랭킹 1위 넬리 코다를 비롯한 정상급 선수들과 끝까지 경쟁하며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부분은 전인지 스스로 자신감을 되찾았다는 점이다.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오랜 습관이 나오면서 샷이 흔들리는 순간도 있었지만 미스샷의 수가 훨씬 줄어들었고 좋은 샷도 많이 나왔다”고 평가했다. 이어 “지난 1년 넘는 기간 동안 마음도 몸도, 골프도 건강해졌다”며 “나아지는 과정을 직접 느끼면서 앞으로 나아갈 의미를 찾았다”고 말했다.
이번 성과는 각종 지표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전인지는 LPGA 투어 CME 포인트 랭킹에서도 57위에서 27위로 무려 30계단 상승했다. 지난해 CME 포인트 랭킹 99위에 머물러 시드 걱정을 해야 했던 상황과 비교하면 극적인 변화다. 현재 흐름이라면 내년 시즌 출전권 확보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한국 여자골프 전체에도 반가운 소식이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선수들의 LPGA 투어 경쟁력이 다소 약화됐다는 평가가 이어졌지만, 전인지가 부활 조짐을 보이면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메이저 대회 경험과 우승 DNA를 갖춘 선수가 다시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물론 전인지는 아직 완전한 부활을 선언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번 US 여자오픈은 분명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오랜 시간 이어진 슬럼프를 딛고 다시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우승 경쟁을 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했다.
우승 트로피는 놓쳤지만, 더 큰 수확을 얻었다. 전인지는 리비에라에서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되찾았고, 세계랭킹과 포인트 순위도 빠르게 회복했다. 한국 여자골프를 대표하는 메이저 챔피언이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번 US 여자오픈 4위는 단순한 호성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전인지의 두 번째 전성기를 기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