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 시각) 영국 스코틀랜드 트룬의 던도널드 링크스(파72·6506야드)에서 개막한 LPGA 투어 스코틀랜드 여자 오픈 1라운드는 골프 대회라기보다 생존 게임에 가까웠다.

시속 30마일, 약 48.3㎞의 강풍이 코스를 휩쓸었다. 최근 이어진 폭염으로 페어웨이와 그린은 바짝 말라 단단해졌다. 공은 착지한 뒤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튀었고, 퍼트는 홀을 지나 그린 밖으로 굴러나가기 일쑤였다.

출전 선수 144명 가운데 언더파를 기록한 선수는 13명뿐이었다. 29명은 80타 이상의 스코어를 적어냈고, 전체 평균 타수는 76.5타까지 치솟았다. 세계적인 선수들조차 링크스의 바람과 단단한 지면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세계랭킹 7위 찰리 헐의 5번 홀에서 나왔다. 파5 홀에서 버디 퍼트를 남겼지만, 울퉁불퉁한 그린 위에서 친 공이 홀을 지나 그린 밖 러프까지 굴러갔다. 이후 네 차례의 칩샷 끝에 겨우 공을 다시 그린에 올렸고, 결국 9타로 홀아웃했다. 한 홀에서 쿼드러플 보기를 범한 헐은 6오버파 78타로 1라운드를 마쳤다.

출산 이후 첫 복귀전을 치른 조지아 홀도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14번 홀 파5에서 무려 10타를 적어내는 퀸튜플 보기를 범하며 10오버파 82타로 주저앉았다.

메이저 대회 3승을 거둔 이민지의 부진은 더욱 뜻밖이었다. 드라이버 샷이 거센 바람에 흔들리면서 14개 페어웨이 가운데 단 3개만 지켰다. 버디는 하나도 없었고 더블 보기만 세 차례를 범했다. 13오버파 85타를 기록한 이민지는 출전 선수 144명 가운데 꼴찌에서 두 번째인 공동 140위까지 밀려났다.

월드클래스 선수들의 스코어카드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동안 바람을 견디며 리더보드 정상에 오른 선수들도 있었다. 한국의 베테랑 신지은과 미국의 로렌 코글린이다.

오전 조로 출발한 신지은은 버디 7개와 보기 1개를 묶어 6언더파 66타를 기록했다. 강풍 속에서도 보기 하나만 허용한 안정감이 돋보였다. 신지은은 링크스 코스에서는 공이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무엇보다 페어웨이를 지키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2024년 이 대회 우승자 코글린도 6언더파로 공동 선두에 올랐다. 마지막 18번 홀에서는 약 30피트 거리의 긴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신지은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김아림은 5언더파 67타로 단독 3위에 자리했다. 거센 바람 속에서도 장타를 앞세워 타수를 줄이며 한국 선수들의 강세를 이끌었다.

세계랭킹 1위 넬리 코다는 이븐파 72타로 공동 14위에 올랐다.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컷 탈락한 뒤 출전한 첫 대회였지만 퍼트 수 30개로 큰 위기를 막아냈다. 언더파 선수가 13명에 불과했던 하루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븐파도 충분히 선방한 스코어였다.

선수들이 던도널드 링크스의 거센 바람과 단단한 그린에서 사투를 벌이는 이유는 총상금 200만 달러가 걸린 이번 대회 때문만은 아니다.

오는 30일에는 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AIG 여자 오픈이 개막한다. 스코틀랜드 여자 오픈은 링크스 적응과 샷 점검을 위한 사실상의 전초전이다. 이곳에서 바람을 경험하고 낮은 탄도의 샷과 그린 주변 플레이를 다듬어야 다음 주 메이저 무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다음 무대는잉글랜드 북서부 랭커셔의 로열 리덤 앤드 세인트앤스 골프클럽이다. 디오픈과 라이더컵이 열렸던 유서깊은 코스다. 바닷가에 바로 붙어 있지는 않지만 해풍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전통의 링크스로, 수많은 항아리 벙커와 깊은 러프가 선수들을 압박한다. 페어웨이를 벗어나면 한 타를 잃는 데서 끝나지 않을 수 있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같은 홀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변한다. 던도널드에서 겪은 단단한 지면과 예측하기 어려운 바운스가 다음 주에도 이어지는 셈이다. 2018년 이곳에서 열린 AIG 여자 오픈에서는 조지아 홀이 정상에 올랐다.

올해 AIG 여자 오픈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넬리 코다와 유해란이 벌이는 메이저 여왕 경쟁 때문이다.

코다는 셰브론 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을 제패했다. 메이저 2승을 포함해 시즌 4승을 거두며 세계랭킹 1위의 독주 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나 유해란이 6월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 이어 7월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까지 연달아 우승하며 판도를 흔들었다. 두 대회 연속 메이저 정상에 오른 유해란은 코다와 나란히 시즌 메이저 2승을 기록하며 강력한 대항마로 떠올랐다.

여자 골프 역사상 한 시즌에 메이저 2승 선수가 두 명 나온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두 선수의 경쟁은 이제 마지막 메이저인 AIG 여자 오픈에서 정점에 이르게 됐다.

메이저 대회 성적을 기준으로 수상자를 가리는 안니카 메이저 어워드에서는 코다가 126점으로 1위, 유해란이 120점으로 2위다. 격차는 단 6점에 불과하다.

AIG 여자 오픈에서 우승하는 선수가 사실상 이 상을 차지하게 된다. 유해란이 4위 이내에 들고 코다가 톱10 밖으로 밀려날 경우에도 순위가 뒤바뀔 수 있다.

평균 타수 부문인 베어 트로피 경쟁도 치열하다. 코다가 평균 68.68타로 1위, 유해란이 69.40타로 2위를 달리고 있다.

올해의 선수상 포인트에서는 코다가 225점, 유해란이 152점이다. CME 글로브 포인트도 코다 3412점, 유해란 2252점으로 두 선수가 상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코다가 주요 지표에서 앞서 있지만 유해란이 마지막 메이저에서 우승한다면 격차는 크게 줄어들 수 있다.

두 선수는 AIG 여자 오픈을 준비하는 방식도 다르다.

코다는 스코틀랜드 여자 오픈에 출전해 링크스의 바람을 직접 경험하며 샷 감각을 끌어올리고 있다. 첫날 이븐파는 폭발적인 스코어는 아니었지만, 위험을 관리하며 코스에 적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반면 유해란은 이번 대회에 출전하지 않고 휴식을 택했다. 높은 탄도로 공을 보내는 자신의 구질과 미니 드라이버의 특성이 강풍이 부는 링크스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체력을 비축하고 마지막 메이저에 집중하는 전략이다.

던도널드 링크스의 초강풍은 세계적인 선수들의 자존심을 무너뜨렸다. 찰리 헐은 한 홀에서 9타를 쳤고, 조지아 홀은 10타를 적어냈다. 메이저 3승의 이민지는 공동 140위로 밀려났다.

그러나 이번 생존 게임은 그 자체로 끝나는 승부가 아니다. 던도널드에서 바람을 견디며 감각을 끌어올린 선택도, 대회를 건너뛰고 체력을 아낀 결정도 모두 다음 주를 향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바람이 먼저 선수들을 시험했다. 이제 로열 리덤 앤드 세인트앤스에서 코다와 유해란, 그리고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시즌 마지막 메이저 여왕의 자리를 놓고 진짜 승부를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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