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세 라이언 폭스는 제154회 디오픈에서 첫 메이저 우승을 차지하면서 골프 챔피언의 본질을 보여주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판단을 믿고 주저 없이 실행하는 결단력(decisiveness)이었다.
우승 장면은 그 모든 것을 압축했다.
18번 홀. 3.6m 남짓한 버디 퍼트. 넣으면 우승, 놓치면 캐머런 영과 연장전을 치를 가능성이 큰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선수라면 여러 번 라인을 확인하고 심호흡을 반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폭스는 달랐다. 공을 내려놓고 라인을 한 차례 살핀 뒤 곧바로 스트로크했다. 볼은 홀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갔다. 폭스는 최종 합계 10언더파 270타로 영을 1타 차로 따돌렸다. 가디언은 이를 “용기와 침착함이 만든 우승”으로 평가했다.

폭스의 스윙은 요즘 젊은 선수들처럼 교과서적으로 아름답지 않다. 백스윙은 다소 짧고, 다운스윙에는 힘이 강하게 실린다. 이른바 ‘아저씨 스윙’에 가깝다. 하지만 임팩트 순간에는 어떤 망설임도 없다.
그의 우승은 기술뿐 아니라 공격적인 사고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폭스는 3라운드에서 메이저대회 18홀 최소타 타이기록인 62타를 친 뒤 “오늘 계획은 공격적으로 치는 것이었다. 실행만 제대로 하면 여기서는 점수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최종 라운드에서도 그 철학을 바꾸지 않았다. 11번 홀 보기로 밀려난 뒤에도 안전하게 파만 지키려 하지 않았다. 마지막 6개 홀에서 버디 4개를 잡아내며 직접 승부를 뒤집었다.
이번 우승으로 뉴질랜드는 1963년 밥 찰스 이후 63년 만에 디오픈 챔피언을 배출했다. 뉴질랜드 골프 역사상 두 번째 클라레 저그였다. 폭스는 밥 찰스와 2005년 US오픈 챔피언 마이클 캠벨에 이어 남자 메이저대회를 제패한 세 번째 뉴질랜드 선수가 됐다.
폭스는 1라운드에서 2오버파 72타를 쳤고, 2라운드 68타로 중간 합계 이븐파를 기록해 컷 기준인 1오버파를 한 타 차로 통과했다. 컷 탈락을 걱정하던 선수가 다음 날 62타를 치며 우승 경쟁에 뛰어들더니, 마지막 날 68타로 역전 우승까지 완성했다. 최종 36홀 130타 역시 디오픈 역사상 최저타 타이기록이었다.
반면 54홀 선두 샘 번스는 무너졌다.
번스는 2타 차 단독 선두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했고 2번 홀 버디로 11언더파까지 달아났다. 그러나 4번 홀부터 3연속 보기를 범한 뒤 버디를 추가하지 못했다. 최종 라운드 72타, 합계 8언더파로 단독 3위였다. 메이저 마지막 날의 압박 속에서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들었던 폭스와 흐름을 되찾지 못한 번스의 차이가 결과를 갈랐다.
김시우도 한때 우승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다.
폭스와 함께 선두에 2타 뒤진 공동 2위로 최종 라운드를 출발한 김시우는 5번과 6번 홀 연속 버디로 10언더파를 만들며 단독 선두에 올랐다. 그러나 후반 11번과 12번 홀에서 연속 보기를 범했고, 16번 홀에서도 한 타를 잃었다. 최종 라운드 72타, 합계 6언더파로 공동 6위. 아시아 선수 최초의 디오픈 우승에는 닿지 못했지만, 마지막 조에서 메이저 우승 경쟁을 펼치며 한국 선수의 가능성을 다시 확인시켰다.
임성재는 첫날 4언더파 66타를 쳐 선두권에 나섰다. 2라운드 72타로 주춤했지만 주말에 69타를 두 차례 기록해 최종 합계 4언더파, 공동 14위로 대회를 마쳤다. 브라이슨 디섐보와 마쓰야마 히데키도 같은 순위였다. 임성재는 로열 버크데일의 까다로운 후반 홀에서도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이며 톱15에 이름을 올렸다.
주요 스타들의 희비도 엇갈렸다.
디펜딩 챔피언이자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는 최종 라운드 67타를 쳐 합계 7언더파 공동 4위에 올랐다. 16번과 17번 홀 연속 버디로 선두를 압박했지만 18번 홀 보기로 2연패 도전이 끝났다. 고향 사우스포트의 응원을 받은 토미 플리트우드도 7언더파 공동 4위였다. 브라이슨 디섐보는 4언더파 공동 14위, 잰더 쇼플리는 3언더파 공동 18위, 로리 매킬로이는 1언더파 공동 40위에 머물렀다. 욘 람은 이븐파 공동 46위였다. 김주형은 3오버파로 컷 탈락했다.
준우승한 영의 추격도 강렬했다. 선두에 7타 뒤진 채 출발해 전반을 29타로 돌았고, 최종 라운드 64타를 몰아쳐 9언더파 클럽하우스 선두에 올랐다. 하지만 18번 홀에서 보기를 범한 것이 끝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두 시간 넘게 연장전을 준비하며 기다렸으나 폭스의 마지막 버디가 그의 희망을 끝냈다.
골프 팬들의 반응도 흥미로웠다.
레딧에서는 “우승 퍼트를 고민한 시간이 내가 트리플 보기 퍼트를 고민하는 시간보다 짧다”, “플레이 속도의 교과서”, “얼음 같은 담력(ice in his veins)”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빠른 플레이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확신에서 나온다는 해석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믿지 못하면 메이저는 우승할 수 없다.
잭 니클라우스는 “골프는 자신감의 게임”이라고 말했다. 라이언 폭스는 로열 버크데일에서 그 말을 가장 설득력 있게 증명했다.
그의 경력도 화려한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출발해 남태평양과 아시아의 작은 대회를 돌았다. 한국에서도 매경오픈과 한국오픈 등에 여러 차례 출전했고, 2015년 매경오픈에서는 공동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유럽 2부 투어를 거쳐 DP월드투어에 올라섰고, 뒤늦게 PGA 투어 무대까지 진출했다. 어디에서도 단숨에 주목받지 못했지만, 자신이 설 수 있는 대회를 찾아 한 단계씩 올라갔다.
PGA 투어에서 결실을 본 것도 지난해였다. 머틀비치 클래식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RBC 캐나다오픈까지 모두 연장전에서 제패하며 늦깎이 스타로 떠올랐다. 그리고 39세에 마침내 디오픈 챔피언이 됐다. 변방의 투어를 돌던 선수가 골프의 가장 오래된 메이저 정상에 선 것이다.
라이언 폭스의 우승은 아름다운 스윙보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가 골프의 결과를 바꾼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다만 그것은 막연한 자신감이 아니었다. 세계 여러 투어에서 쌓은 경험, 연장 승부에서 길러진 담력, 메이저 타이기록을 만들 만큼 준비된 기술이 뒷받침된 확신이었다. 18번 홀의 3.6m 퍼트는 그 오랜 축적을 한 번의 스트로크로 압축한 장면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