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고전 영화 카사블랑카를 우연히 다시 보았다. “Here’s looking at you, kid(그대 눈동자에 건배).” 어린 시절 잉그리드 버그먼의 미모에 빠져 있던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영화 덕분에 카사블랑카라는 이름은 낭만의 상징처럼 남아 있다.
나는 오랫동안 축구기자로도 일했다. 그래서 축구라는 창을 통해 국가를 들여다보는 습관이 있다.
오늘 아침 모로코와 브라질의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로코는 이제 더 이상 관광 엽서 속 나라가 아니구나.
모로코 축구는 충분히 매혹적이었다. 2007년생 미드필더 아유브 부아디가 뿌리는 패스 줄기는 모로코의 활력과 유려함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선수들은 브라질을 상대로도 1대1 개인기 대결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삼바 축구의 본산인 브라질이 조직력으로 버티고 막아내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특히 역습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공을 탈취하자마자 다섯 명의 선수가 화살처럼 직선으로 상대 골문을 향해 질주했다. 잘 벼려진 일류라는 산뜻함이 느껴진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4강 신화는 우연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그것이 지속 가능한 모델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모로코의 강점은 탄탄한 수비와 역습, 그리고 승부차기였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꺾었지만 점유율을 내주고 버티는 경기 운영이 주를 이뤘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에서 본 모로코는 달랐다. 지난해 U-20 월드컵 우승을 이끈 모하메드 우아비 감독이 대표팀을 맡으면서 팀의 성격 자체가 바뀌었다. 카타르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왈리드 레그라귀 감독이 상대에게 공을 내주고 공간을 통제하는 데 능했다면, 우아비 감독은 공을 빼앗은 뒤 곧바로 전진하고, 필요하면 점유율도 마다하지 않는 스타일에 가깝다. 브라질전 전반 45분은 마치 U-20 대표팀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보는 듯했다.
점유율을 가져가고, 전방 압박을 하고, 경기를 주도했다. 전반에 된통 당한 브라질이 오히려 수비 라인을 내리고 뒷문을 잠그는 모습은 꽤 낯설었다. 이날만큼은 모로코가 브라질보다 더 브라질 같은 시간이 길었다.
모로코의 성공은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2008년 모하메드 6세 국왕이 축구를 국가 발전 프로젝트로 선언한 뒤, 모로코는 전국에 수천 개의 축구장을 만들고 세계적 수준의 모하메드 6세 아카데미를 세웠다. 여기에 프랑스·스페인·벨기에·네덜란드 등지에 흩어져 있던 모로코계 인재들을 하나로 묶었다. FIFA는 이를 “10년 넘게 추진한 국가 프로젝트의 결실”이라고 평가했다.
흥미로운 것은 모로코가 축구를 단순한 스포츠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2030 월드컵 공동 개최조차 최종 목표가 아니다. 축구를 통해 국가 브랜딩에 나선 것이다. 인프라를 만들고, 인재를 키우고,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것이 진짜 목표다.
그래서 오늘 경기에서 내가 본 것은 단순한 1대1 무승부가 아니었다. 영화 카사블랑카가 만들어준 낭만의 나라 모로코가, 이제는 축구를 통해 스스로를 다시 디자인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꽤 멋져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