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축구는 불편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경기 역시 호주의 경기였다.

브라질도 아니고, 독일도 아니고, 화려한 공격 축구를 자랑하는 강팀도 아니었다. 오히려 축구의 아름다움과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팀이 사람을 TV 앞에 붙들어 놓았다.

튀르키예는 끊임없이 공격했다. 공을 소유했고 경기를 지배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선수들의 표정은 굳어졌다. 자신들이 경기를 주도하고 있는데도 길이 보이지 않았다. 호주 선수들은 페널티박스 주변으로 끊임없이 모여들었고, 공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늪에 빠진 듯한 경기였다.

‘현대판 카테나치오(빗장수비)’일까. 아니면 더 직설적으로 ‘안티 풋볼(Anti-Football)’일까.

점유율과 공격성을 중시하는 현대 축구의 흐름에 정면으로 맞서는 축구처럼 보였다.

호주는 공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상대와 정면 승부를 벌이려 하지도 않는다. 공간을 지우고 흐름을 끊는다. 상대를 지치게 만든다. 아름다움보다 생존을 선택한 축구다.

하지만 호주는 단순히 페널티박스 앞에 버스 두 대를 세워 놓는 팀이 아니다. 반칙을 일삼거나 시간을 끌며 버티는 팀도 아니다. 11명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며 공간을 통제한다. 마치 거대한 고슴도치 같았다. 어느 방향으로 찔러도 가시에 막혔다.

튀르키예전이 흥미로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작 눈여겨봐야 할 것은 전환의 속도였다.

호주는 중앙을 극단적으로 압축해 상대를 측면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공을 탈취하는 순간 곧바로 빈 공간으로 달려들었다. 몇 차례 패스만으로 상대 박스 앞까지 도달했고, 튀르키예 수비가 정렬되기 전에 승부를 끝냈다.

2골 모두 그런 장면에서 나왔다.

“호주는 수비적이었지만 결코 소극적이지 않았다(Australia were defensive without being passive)”는 평가를 받을 만했다.

이 축구의 설계자는 토니 포포비치 감독이다. 2006 독일 월드컵 당시 호주의 주전 센터백으로 활약했던 그는 지도자가 된 뒤 조직력과 팀 수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를 이끌고 창단 2년 만에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아시아 무대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의 축구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디에고 시메오네가 이끄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떠오른다. 점유율보다 공간을 중시하고, 화려한 패스보다 전환의 효율을 추구한다. 상대가 공을 가질수록 오히려 자신들이 원하는 경기에 가까워진다고 믿는다.

포포비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점유율이 아니다.

공을 탈취한 뒤 얼마나 빠르게 상대 골문을 위협할 수 있는가다.

그의 팀은 수비를 위해 수비하지 않는다. 상대를 깊숙이 끌어들인 뒤 가장 짧은 시간, 가장 짧은 경로로 골문까지 도달하려 한다. 그래서 호주의 진짜 무기는 밀집수비 자체가 아니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속도다.

그래서 이 축구는 묘미가 있다.

안티 풋볼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현대적인 축구이기도 하다. 공을 오래 소유하는 대신 가장 효율적인 순간에 가장 짧은 경로를 선택한다. 아름다움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기준 자체가 다르다.

결국 호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 들었다.

축구는 아름다워야 하는가.

아니면 이겨야 하는가.

크루이프의 후계자들은 여전히 공을 소유하고 끊임없이 패스를 이어가는 축구를 이야기한다. 반면 현실주의자들은 팀이 가진 자원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는다. 그리고 월드컵 같은 토너먼트에서는 종종 후자가 살아남는다.

그래서 20일 호주와 미국의 경기는 흥미롭다.

파라과이를 4-1로 꺾은 미국은 이번 대회에서 가장 위협적인 공격력을 보여준 팀 중 하나다. 세상의 어떤 방패라도 꿰뚫을 것 같은 창이다.

반면 호주는 세상의 어떤 창도 쉽게 통과시키지 않을 것 같은 방패다.

축구는 아름다울수록 좋다.

하지만 월드컵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어쩌면 여전히 스코어보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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