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에 대해 쓰지 않을 수 없다. 메시를 쓰지 않는다면 축구에 대해 쓰지 않는 것과 같다.
알제리전에서 메시는 생애 첫 월드컵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세 골 모두 완벽했다. 골문 앞의 침착함, 공간을 읽는 능력, 수비수보다 먼저 상황을 이해하는 감각이 집약된 골들이었다. 오프사이드로 취소된 골마저 감탄을 자아냈다. 사람들은 그에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길이 보인다고 말한다. 과장이 아니다. 메시는 늘 다른 선수들보다 먼저 공간을 발견한다.
서른아홉의 메시는 더 이상 예전처럼 뛰지 않는다.
그는 이제 경기 내내 질주하는 대신 가장 중요한 순간을 기다린다. 동료들은 그가 비워둔 공간을 메운다. 하지만 그것은 노쇠한 천재를 위한 배려가 아니다. 가장 효율적으로 경기를 지배하는 방법이다. 메시는 단순한 스타 플레이어가 아니라 아르헨티나 축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처음 월드컵 무대에 선 메시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당시 그는 이미 바르셀로나가 주목하던 천재였다. 성장호르몬 결핍증을 극복한 소년, 작은 체구 때문에 ‘벼룩’이라는 별명을 가진 선수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이후 20년 가까이 축구의 기준이 됐다.
하지만 월드컵은 오랫동안 그의 상처였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 독일에 연장 결승골을 허용한 뒤 고개를 숙인 채 경기장을 떠나던 메시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월드컵만은 허락받지 못한 선수. 세상은 왜 자신에게 월드컵만은 주지 않는지 묻는 듯했다.
메시를 이해하려면 아르헨티나 축구를 이해해야 한다.
아르헨티나에는 라 누에스트라(La Nuestra) 라는 독특한 축구 철학이 있다. ‘우리의 축구’라는 뜻이다. 영국이 들여온 규율과 조직의 축구에 맞서 개인기와 창의성, 즉흥성을 중시하는 아르헨티나식 축구 철학이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영리함인 ‘피카르디아’ 역시 그 일부다. 마라도나는 그 철학이 낳은 가장 위대한 예술가였다.
그런데 메시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다.
그에게는 다른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갖지 못한 경험이 있었다. 어린 시절 바르셀로나 유소년 시스템인 라 마시아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라 마시아는 요한 크루이프가 심어놓은 축구 철학을 계승하는 곳이다.
“우리가 공을 갖고 있으면 실점하지 않는다. 실점하지 않으면 지지 않는다.”
크루이프 축구의 핵심은 물리학 법칙처럼 명징하다. 공은 사람보다 빠르다. 따라서 선수보다 공이 움직여야 한다. 패스를 통해 공간을 만들고 점유율로 경기를 통제한다. 훗날 티키타카로 불린 축구의 본질이다.
메시는 사비, 이니에스타, 부스케츠와 함께 크루이프가 설계하고 과르디올라가 구현한 축구의 완성형을 보여줬다. 바르셀로나는 세계 축구의 기준이 됐고, 스페인 대표팀은 월드컵과 유럽선수권 우승으로 그 가치를 증명했다.
그래서 메시는 특별하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라 누에스트라와 바르셀로나의 라 마시아를 가장 완벽하게 결합한 선수다. 마라도나가 상징하는 창조성과 즉흥성, 크루이프가 설계한 질서와 구조가 한 몸 안에 공존한다. 그는 영감으로 수비를 무너뜨리면서도 계산으로 경기를 지배한다. 예술가이면서 건축가이고, 거리 축구의 소년이면서 현대 축구의 완성형이다.
많은 사람들이 2022 카타르월드컵 우승을 메시의 라스트 댄스라고 불렀다.
하지만 북중미 월드컵에서 그는 다시 춤추고 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번 아르헨티나가 오히려 더 강해 보인다는 점이다. 엔소 페르난데스, 맥알리스터, 훌리안 알바레스 등 젊은 선수들은 이제 세계 정상급으로 성장했다. 과거에는 메시가 팀을 끌고 갔다면, 지금은 팀 전체가 메시의 축구를 이해한다.
축구는 무엇인가.
공간을 찾는 능력이고, 시간을 지배하는 기술이며, 공 하나로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예술이다.
우리는 지금 단지 위대한 선수의 마지막 월드컵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마라도나의 영혼과 크루이프의 이성이 한 인간 안에서 어떻게 공존하는지를 보고 있다. 아르헨티나가 추구한 축구의 낭만과 현대 축구가 요구하는 효율성이 만난 결과가 바로 메시다.
메시는 지금도 축구의 정의를 쓰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축구라는 종목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