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투어 시즌 개막전 ‘힐튼 그랜드 배케이션스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TOC)’이 2일 한파의 영향으로 54홀로 축소된 것을 두고 후폭풍이 거세다. 다음 대회까지 2주일 가량 충분한 여유가 있는데도 예비일을 활용해 진정한 챔피언을 가릴 기회를 스스로 없애버렸다는 점에서 LPGA 사무국의 근시안적이고 비과학적인 행정을 질타하는 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악조건을 딛고 공정한 경쟁을 치르는 스포츠의 기본 정신을 망각했다는 평까지 나온다.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최종 라운드를 취소하며 대회를 54홀로 성급히 마무리한 이번 사태는 투어의 권위와 스포츠 정신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는 지적이다.

2일 넬리 코다(미국)가 1년 만에 거둔 우승 트로피를 다시 품에 안았다. 하지만 이는 그녀 자신이나 LPGA가 2026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구상했던 화려한 복귀의 모습은 아니었다. 2025년 한 해 동안 승리가 없었던 세계 랭킹 2위 코다는, LPGA가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레이크 노나에서 열린 시즌 개막전 ‘힐튼 그랜드 배케이션스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TOC)’를 54홀로 축소하기로 전격 결정하면서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연습 도중 우승 소식을 들어야 했다.
특히 이번 결정은 역전의 기회를 노리던 한국 선수들에게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선두 코다를 3타 차로 바짝 추격하며 마지막 라운드에서 뒤집기 한판승을 노렸던 양희영은 추격전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대회를 마무리했다. 또한, 3라운드 잔여 경기 중 17번 홀에서 초속 10m 이상의 강풍과 싸우며 타수를 잃었던 황유민은 그 불운을 만회할 마지막 18홀을 박탈당하며 이번 성급한 마침표의 가장 큰 희생양이 되었다.

논란의 54홀 축소, ‘최적의 환경’은 누구를 위한 기준인가
LPGA는 대회 최종일인 일요일 정오(현지시간)경, “프로 대회를 위한 최적의 경쟁 환경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최종 라운드 취소를 발표했다. 올랜도 지역을 덮친 영하권의 추위와 전날 발생한 강풍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이 결정은 발표 직후부터 현장과 미디어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가장 먼저 의문을 제기한 것은 레이크 노나의 거주자이자 이번 대회 셀러브리티 부문에 참가한 ‘전설’ 아니카 소렌스탐이었다. 소렌스탐은 일요일 오전 직접 9홀을 플레이한 뒤 “왜 경기를 안 하는지 모르겠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코스에 피치 마크가 생기고 공이 그린에 멈출 정도로 상태가 나쁘지 않다”며 “춥고 힘들긴 하지만 조건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경기 위원에게 우리는 계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일침을 가했다.
실제로 기상 데이터를 살펴보면 LPGA의 결정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일요일 최저 기온은 약 -4.4°C(화씨 24도)까지 떨어졌으나, 정오를 기점으로 기온은 영상으로 올라섰고 바람도 잦아든 상태였다. 더욱이 다음 날인 월요일 낮 최고 기온은 11.7°C(화씨 53도), 화요일은 17.2°C(화씨 63도)까지 오를 것으로 예보되어 있었다. 다음 대회가 18일 뒤인 2월 19일 태국에서 열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예비일을 활용해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대회를 마치는 선택지를 외면한 LPGA의 행보는 지나치게 성급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중 잣대’ 논란: 프로는 ‘불가’, 아마추어는 ‘가능’?
이번 사태의 핵심 논란은 프로와 아마추어 셀러브리티 사이에 적용된 노골적인 ‘이중 잣대’에 있다. LPGA가 “프로 대회를 위한 최적의 환경이 아니다”라며 4라운드 취소를 발표한 그 시각, 코스 위에서는 프로암 부문에 참가한 셀러브리티들이 버젓이 9홀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LPGA 관계자는 이에 대해 “유명인들은 공식 순위와 관계없는 ‘엑시비션(Exhibition)’ 경기를 치르는 것이기 때문에 플레이가 허용됐다”는 궁색한 논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골프 채널의 에이미 로저스 기자는 이 지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로저스 기자는 현장 리포트를 통해 “추운 날씨가 구체적으로 공과 코스에 어떤 물리적 영향을 주어 경기를 취소하는지에 대해 위원회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소렌스탐 역시 유명인 부문에도 엄연히 상금이 걸려 있음을 지적하며, 같은 날씨와 코스 조건에서 아마추어는 가능하고 세계 최고의 여성 골퍼들은 불가능하다는 위원회의 판단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중계방송 시간 조율과 행정적 편의를 위해 스포츠의 본질인 ‘공정한 경쟁’을 희생시켰다는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 발로 찬 천운의 기회”… 미디어의 혹평
현지 언론의 반응은 냉담하다. 미국 골프 닷컴의 편집장 조쉬 슈록은 이번 결정을 두고 “LPGA가 스스로 굴러온 복을 발로 찼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미국 내에서 LPGA 투어는 PGA 투어에 비해 인지도가 현저히 낮지만, ‘흥행 보증수표’인 넬리 코다에 대한 관심만큼은 압도적으로 높다.
골프 위크는 “코다가 3타 차 선두인 상황에서 마지막 라운드가 생중계됐다면, 악천후 속에서 벌어지는 드라마틱한 명승부 덕분에 이례적으로 높은 시청률과 대중적 주목을 받을 절호의 기회였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LPGA가 마치 코다에게 우승컵을 ‘헌납’하려는 듯 석연치 않은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투어의 인기를 끌어올릴 천운의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다는 평이다.
선수들의 허탈함: “우리는 운동선수다”
대회 축소 결정은 역전의 기회를 노리던 모든 선수에게 깊은 상실감을 안겼다. 리디아 고는 “내일 경기를 못 하게 되어 정말 허탈하다(Gutted)”며 아쉬움을 표했다. 다니엘 강은 아예 자신의 SNS를 통해 팬들에게 “LPGA가 대회를 54홀로 축소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직접 의견을 물음으로써 위원회의 결정에 우회적인 불만을 표시했다.
우승자 넬리 코다조차 본인의 우승이 확정된 순간에 연습장에 있었다는 사실은 이번 대회가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마무리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필드 평균 타수보다 9타나 적게 치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던 코다였기에, 그녀가 거친 환경을 뚫고 정당하게 72홀을 마무리하며 무승의 고리를 끊어내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어 했던 팬들의 실망감도 컸다.
남겨진 숙제: 행정 편의주의를 넘어선 공정성
크레이그 케슬러 신임 커미셔너 체제에서 야심 차게 문을 연 2026 시즌은 ‘최적의 경쟁 환경’이라는 모호한 용어 뒤에 숨은 행정 편의주의적 결정으로 오점을 남겼다. 최고의 흥행 카드인 넬리 코다가 선두를 달리고 있었고, 양희영과 황유민 등 한국 선수들의 매서운 추격이 예상되던 상황에서 LPGA는 팬들이 기대했던 진검승부의 장을 스스로 걷어찼다.
선수들은 단순히 좋은 날씨에서만 공을 치는 모델이 아니라, 비와 바람, 추위라는 극한의 조건과 싸워 이기는 운동선수들이다. LPGA가 진정한 세계 최고의 투어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기상 예보나 중계 일정에 매몰되기보다 선수들이 필드 위에서 흘린 땀방울의 가치를 온전히 보전할 수 있는 공정하고 유연한 경기 운영 능력을 먼저 갖춰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