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가든스에 위치한 PGA 내셔널 챔피언코스(파71·7223야드)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코그니전트 클래식(총상금 960만 달러)이 극적인 대역전극으로 막을 내렸다.
3타 차 선두를 굳건히 지키며 우승을 목전에 두었던 셰인 라우리(아일랜드)가 경기 막판 뼈아픈 실수를 연발하며 스스로 무너진 가운데, 니코 에차바리아(콜롬비아)가 최종 합계 17언더파 267타를 기록하며 짜릿한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에차바리아는 마지막 날 보기 없이 버디만 5개를 솎아내며 5언더파 66타를 쳐, 2024년 10월 조조 챔피언십 이후 1년 5개월 만에 투어 통산 3승을 달성하며 우승 상금 172만 8000 달러(약 25억 원)를 거머쥐었다. 반면 다 잡았던 우승을 놓친 라우리는 최종 라운드에서 이글 1개, 버디 4개, 더블 보기 2개를 묶어 2언더파 69타를 치는 데 그치며, 최종 합계 15언더파 269타로 테일러 무어, 오스틴 스머더먼(이상 미국)과 함께 공동 2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한편, LIV 골프를 탈퇴하고 올해 PGA 투어로 복귀해 큰 관심을 모은 브룩스 켑카(미국)는 마지막 날 6타를 줄이는 맹타를 휘두르며 최종 합계 10언더파 274타로 공동 9위에 오르는 선전을 펼쳤다.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컷을 통과한 김주형은 최종 합계 1언더파 283타로 59위에 머물렀다.

2. 우승의 향방을 가른 악명 높은 난코스, ‘베어 트랩(The Bear Trap)’ 이번 대회의 승패를 결정지은 결정적인 구간은 바로 골프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코스 중 하나로 불리는 ‘베어 트랩’이었다. 대회가 열린 PGA 내셔널 리조트에는 총 5개의 18홀 챔피언십 골프 코스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코그니전트 클래식(구 혼다 클래식)이 열리는 ‘챔피언(The Champion)’ 코스가 가장 유명하다. 1981년에 개장한 이 코스는 1983년 라이더 컵, 1987년 PGA 챔피언십 등을 개최한 유서 깊은 곳이다.
특히 파3 15번 홀, 파4 16번 홀, 파3 17번 홀로 이어지는 가혹한 3개 홀 구간은 코스를 재설계한 ‘골든 베어’ 잭 니클라우스의 이름을 따 ‘베어 트랩’으로 명명되었다. 이 구간은 그린이 깊은 벙커와 거대한 호수에 둘러싸여 있어 선수들의 아주 작은 실수조차 가차 없이 응징하는 난코스로 명성이 자자하다.

베어 트랩의 위력은 매년 선수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지난해 대회의 경우, 2라운드까지 공동 7위로 호성적을 내던 테일러 몽고메리가 3라운드 15번 홀에서 티샷을 호수에 빠뜨리며 7타를 쳤고, 이어진 16번 홀에서도 7타를 기록하며 공동 25위로 추락하는 등 수많은 선수들이 이곳에서 무릎을 꿇었다. 올해 대회 역시 이 베어 트랩이 최종 우승 트로피의 향방을 결정짓는 잔혹한 무대가 되었다.
3. 압도적이었던 라우리의 질주와 다가왔던 우승의 순간 최종 라운드 중반까지만 해도 셰인 라우리의 우승을 의심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토요일 3라운드에서 8언더파를 몰아치며 상승세를 탄 라우리는 일요일 전반에도 2타를 줄였고, 후반 들어서는 더욱 맹렬한 공격력을 뿜어냈다.
10번 홀(파5)에서 환상적인 이글을 잡아낸 라우리는 이어진 12번 홀(파4)과 13번 홀(파4)에서도 연속 버디를 낚으며 단독 선두를 질주했다. 중계진은 라우리가 보여준 놀라운 흐름에 “대단한 돌격(What a charge)”이라며 찬사를 보냈고, 특유의 철학에 따라 여유 있게 샷을 준비하는 모습에서 그가 완벽히 흐름을 탔다고 평가했다. 15번 홀을 마쳤을 때 라우리는 최근 5개 홀에서 무려 5언더파를 기록하는 폭발적인 감각을 과시하며 2위 에차바리아를 3타 차로 여유 있게 따돌렸다.
라우리는 10년이 넘는 미국 본토 스트로크 플레이 가뭄을 끝내고 통산 네 번째 우승을 차지할 준비를 마친 듯했다. 에차바리아 역시 “솔직히 라우리가 3타 차 선두를 달리고 있을 때는 우승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을 정도였다.
4. 운명의 16번 홀, 스스로 촉발한 붕괴의 서막 그러나 비극은 16번 홀(파4) 티박스에서 시작되었다. 라우리는 경기 전 멘탈 코치인 밥 로텔라와 함께 단순하고 편안하게 경기에 임하자는 대화를 나누었지만, 압박감 속에서 그 평정심은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다.
라우리는 롱 아이언을 쥐고 티샷을 준비했으나, 그의 클럽을 떠난 공은 심하게 오른쪽으로 밀려버렸다. 중계진은 즉각 “오른쪽으로 샌다. 전혀 좋지 않다. 육지를 넘겼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공은 속절없이 호수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플로리다의 태양 아래 서 있는 라우리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자신의 스윙이 무너진 것에 충격을 받은 듯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벌타를 받고 드롭을 한 라우리는 세 번째 샷을 시도했으나, 이마저도 크게 당겨지면서 그린 앞 벙커로 향하고 말았다. 다행히 벙커에서 환상적인 어프로치 샷으로 공을 홀 곁에 붙이며 간신히 더블 보기로 막아냈지만, 순식간에 2타를 잃으며 선두 격차는 1타 차로 줄어들었다.
5. 17번 홀의 연속된 악몽과 상실된 감각 1타 차의 불안한 리드를 안고 맞이한 17번 홀(파3), 베어 트랩의 마지막 관문에서 라우리는 또다시 무너졌다. 앞서 16번 홀에서의 실수를 극복하지 못한 듯, 7번 아이언을 잡고 친 티샷이 다시 한번 심하게 오른쪽으로 쏠리며 수면 속으로 사라졌다. 중계진은 “세상에, 두 번 연속이다. 라우리가 16번 홀에 이어 또 아이언을 잡고 물에 빠뜨렸다”라며 호들갑을 떨었고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벌타를 받고 129야드 거리에서 웨지로 시도한 세 번째 샷마저 크게 떠서 그린 중앙을 향했지만, 그는 완전히 넋이 나간 상태였다. 이 홀에서마저 연거푸 더블 보기를 적어낸 라우리는 결국 3타 차 리드를 모두 잃고 선두 자리를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라우리는 훗날 “16번 홀 티샷 이후 마지막 세 홀에서 클럽페이스의 감각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고 고백하며 당시 느꼈던 극심한 혼란을 설명했다. 이는 베어 트랩의 물리적인 험난함 때문이라기보다, 라우리 스스로 촉발한 붕괴의 결과였다.
6. 에차바리아의 완벽한 주말과 침착한 대역전 라우리가 베어 트랩에서 연이은 더블 보기로 자멸하는 동안, 바로 앞 조에서 플레이하던 에차바리아는 침착하게 기회를 낚아챘다. 17번 홀에서 에차바리아가 친 티샷 역시 오른쪽으로 밀리며 물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위협했으나, 천만다행으로 홀 아래 안전한 곳에 멈춰 섰다. 행운을 놓치지 않은 그는 비교적 평범한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마침내 역전에 성공했다.
18번 홀 티스탠드로 걸어가던 중 캐디를 통해 라우리가 또다시 물에 공을 빠뜨렸다는 소식을 접한 에차바리아는 영리하게 플레이를 조율했다. 18번 홀(파5)에서 안전하게 왼쪽으로 끊어간 그는 세 번째 샷으로 97야드 거리에서 로브 웨지를 사용해 그린에 올렸고, 안전하게 파를 기록하며 경기를 마쳤다.
에차바리아는 투어에서 가장 까다로운 코스 중 하나인 이곳에서 보기 없이 완벽한 라운드를 완성했다. 흥미롭게도 에차바리아는 금요일에 아내 클라우디아와 함께 대회장 근처의 새 집 계약을 마쳤고, 버네두들 반려견까지 입양하며 개인적으로도 잊지 못할 최고의 주말을 장식했다.
7. “내 자신에게 졌다” – 라우리의 뼈아픈 후회와 눈물 반면, 연장전을 위해 18번 홀에서 기적 같은 이글이 필요했던 라우리는 두 번째 샷마저 벙커에 빠뜨렸고(“기회를 살리려면 홀아웃해야 한다”), 벙커샷마저 홀을 외면하면서 결국 파로 마무리하며 패배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붉게 상기된 얼굴과 축 처진 어깨로 인터뷰장에 나타난 그는 지난 2022년 이 대회에서 갑작스러운 폭우로 인해 간발의 차로 우승을 놓쳤던 때와 지금을 비교했다. “그때는 날씨에 졌다고 할 수 있지만, 오늘은 나 자신에게 졌다”며 자책했다.
라우리의 뼈아픈 붕괴는 올해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두바이 크리크 리조트에서 열린 DP 월드투어 두바이 인터내셔널에서도 선두를 달리다 18번 홀에서 어이없는 웨지 샷과 벙커 샷 실수로 더블 보기를 범하며 나초 엘비라(스페인)에게 우승을 내준 바 있다. 라우리는 “우승을 내 손에 쥐고 있었는데 스스로 놓쳐버렸다. 올해에만 벌써 두 번째다. 이런 데 소질이 생기는 것 같다”며 씁쓸한 농담과 함께 한탄을 내뱉었다. “두바이 대회 때 참 힘들었는데, 이번이 더 힘들어질 것 같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무엇보다 라우리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한 것은 가족이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오늘 내가 이토록 우승을 원했던 이유는 오직 네 살배기 딸 때문이었다. 다른 건 신경 쓰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이어 “딸아이 앞에서 단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었는데, 딸이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딸아이의 붉은 머리카락이 18번 그린을 향해 찰랑거리며 달려오는 모습을 보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일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해낸 줄 알았다. 우승할 줄 알았다”라며 끝내 깊은 절망감을 드러냈다.
가장 잔혹한 코스 설계와 한 선수의 뼈아픈 실수, 그리고 이를 놓치지 않은 추격자의 침착함이 맞물린 이번 코그니전트 클래식은 골프가 얼마나 순식간에 희비가 교차할 수 있는 가혹한 스포츠인지를 증명하며 역사에 남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