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턴베리(Trump Turnberry)는 스코틀랜드 남서부 에어셔(Ayrshire) 해안의 클라이드만(Firth of Clyde)에 자리 잡고 있는 전설적인 골프 리조트이다. 스코틀랜드 최대 항구 도시인 글래스고에서 남쪽으로 약 80km 떨어져 있으며, 거친 아일랜드해와 아스라이 보이는 에일사 크레이그(Ailsa Craig) 섬, 그리고 애런(Arran) 섬이 빚어내는 장엄한 절경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링크스 코스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리조트는 파 71, 전장 7448야드(6810m)의 에일사(Ailsa) 코스, 파 72, 전장 7204야드(6587m)의 킹 로버트 더 브루스(King Robert the Bruce) 챔피언십 코스, 그리고 파 31의 9홀 규모인 애런 코스 등 총 45홀과 콜린 몽고메리 링크스 골프 아카데미로 구성되어 있다. 2024년 ‘골프 다이제스트’가 선정한 세계 100대 골프 코스에서 에일사 코스는 8위, 킹 로버트 더 브루스 코스는 94위에 올랐다.

 턴베리의 기원 

이곳은 1274년 잉글랜드에 대항해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을 이끈 로버트 더 브루스 왕이 태어난 ‘턴베리 성(Turnberry Castle)’의 본거지로, 현재 코스 내 등대 앞 해안 절벽에는 옛 성곽의 폐허가 남아있다. 

현대적인 골프장을 조성한 이는 제3대 에일사 후작인 아치발드 케네디(Archibald Kennedy)이다.  그는 1899년 메이든스 앤 던유어 경전철(Maidens and Dunure Light Railway)이 해안을 따라 건설된다는 소식에 눈을 돌려, 농사에 부적합한 이 땅에 골프장을 건설하기로 결심했다. 1883년 디 오픈 우승자인 윌리 퍼니(Willie Fernie)가 설계를 맡아 1901년 13홀 규모로 처음 코스를 조성했고, 1906년 정식으로 개장했다. 유명 건축가 제임스 밀러(James Miller)가 설계한 고풍스러운 턴베리 호텔 역시 1906년 기차역 개통과 함께 문을 열며 영국 전역의 방문객을 맞이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매켄지 로스의 복원 작업 

턴베리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동안 골프장이 아닌 군사 시설로 징발되는 시련을 겪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왕립비행대(RFC)의 공중 사격 훈련용 비행장으로 쓰였고, 호텔은 부상병을 위한 병원으로 사용되었다. 전후 코스를 ‘에일사’와 ‘애런’으로 재단장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다시 영국 공군(RAF) 비행장으로 쓰이며 코스 위로 아스팔트 활주로가 깔렸다. 이 기간 비행 훈련 중 약 200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이를 기리기 위해 에일사 코스의 12번 홀(Monument) 그린 옆에는 위령비가 세워졌다. 종전 후 골프장과 호텔은 폐허 상태였으나, 1949년부터 1951년 사이 건축가 매켄지 로스(Mackenzie Ross)가 불도저를 동원해 활주로를 거둬내고 모래와 흙을 덮는 대대적인 작업을 통해 에일사 코스를 현대적인 링크스의 걸작으로 부활시켰다.

턴베리의 상징 ‘하얀 등대’와 시그니처 에일사 코스 

턴베리를 상징하는 최고의 랜드마크는 에일사 코스의 해안 절벽에 우뚝 솟은 하얀 등대이다. 1873년에 건립된 이 등대는 소설 ‘보물섬’의 저자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아버지 토머스 스티븐슨(Thomas Stevenson)이 설계했다. 

등대의 진가는 에일사 코스의 시그니처 홀인 파3 9번 홀(248야드) ‘브루스 캐슬(Bruce’s Castle)’에서 빛을 발한다. 티잉 구역 왼쪽에 등대를 두고 바다와 험준한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넘겨 그린을 공략해야 하는 이 홀은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풍광을 자랑한다. 

등대 내부에는 햄버거, 생선튀김, 맥주 등을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이 마련되어 있으며, 맑은 날에는 테라스에서 약 18km 떨어진 에일사 크레이그 섬을 조망할 수 있다. 사발을 엎어놓은 듯한 모양의 에일사 크레이그 섬은 동계 올림픽 컬링 경기에 사용되는 화강암의 원산지로도 유명하다. 코스 전체의 구성도 극적이다. 파4 1번 홀 ‘에일사 크레이그’로 시작해, 깊은 항아리 벙커를 피해야 하는 15번 홀 ‘카 카니(Ca’ Canny)’, 그리고 치열한 바람과 맞서야 하는 10번 홀 등 매 홀이 전략과 정밀함을 요구한다. 에일사 코스는 2015년 마틴 에버트(Martin Ebert)에 의해 전면 재설계되며 최고 수준의 예술성과 난이도를 완성했다.

디 오픈 명승부의 현장, 1977년 ‘듀얼 인 더 선(태양 아래 결투)’ 

턴베리 에일사 코스에서는 1977년, 1986년, 1994년, 2009년 등 총 4차례에 걸쳐 디 오픈 챔피언십(The Open Championship)이 열렸다. 

가장 위대한 명승부는 사상 첫 개최였던 1977년에 탄생했다. 당시 28세였던 신성 톰 왓슨(Tom Watson)과 이미 통산 64승을 거둔 37세의 잭 니클라우스(Jack Nicklaus)가 맞붙었다. 나흘 내내 유례없이 맑고 뜨거운 날씨 속에 3라운드까지 동타를 이룬 두 선수는 최종 4라운드 16번 홀까지도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파5 17번 홀에서 왓슨이 버디를 낚으며 1타 차 선두로 나섰고, 대망의 파4 18번 홀에서 니클라우스가 극적인 12m 롱 버디 퍼트를 성공시켰으나, 왓슨이 침착하게 60cm 버디 퍼트로 응수하며 268타(12언더파)로 최종 우승을 확정 지었다. 3위 선수를 10타 차로 따돌린 두 거장의 이 처절한 사투는 ‘듀얼 인 더 선(Duel in the Sun)’라는 이름으로 골프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이 대결을 기념하기 위해 2003년, 에일사 코스 18번 홀(구 에일사 헤임)의 명칭은 ‘듀얼 인 더 선’으로 변경되었으며, 리조트 내 스포츠 바 이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이후 1986년 그렉 노먼(Greg Norman), 1994년 닉 프라이스(Nick Price)가 우승을 차지했다. 2009년 대회에서는 59세의 톰 왓슨이 18번 홀까지 1타 차 단독 선두를 유지하며 최고령 우승의 기적을 눈앞에 두었으나, 두 번째 샷이 그린을 넘어가며 보기를 기록해 결국 스튜어트 싱크(Stewart Cink)에게 연장전 끝에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그러나 왓슨은 “이게 장례식은 아니지 않느냐”라는 품격 있는 소감을 남기며 박수갈채를 받았다.

박인비의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

턴베리에서는 시니어 오픈(Senior Open Championship)이 무려 7차례나 열렸다. 1987년 닐 콜스(Neil Coles)를 시작으로, 게리 플레이어(Gary Player)가 두 차례(1988, 1990) 우승했고, 2003년에는 톰 왓슨이, 2012년에는 프레드 커플스(Fred Couples)가 트로피를 차지했다. 여성 최고 권위 대회인 브리티시 여자오픈(Women’s British Open)도 두 차례 개최되었다. 2002년에는 호주의 캐리 웹(Karrie Webb)이 273타(15언더파)로 우승했다. 특히 2015년 대회에서는 박인비가 276타(12언더파)로 정상에 올랐다. 이 우승으로 박인비는 LPGA 투어 4개의 각기 다른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모두 거머쥐는 대기록인 ‘커리어 그랜드슬램(Career Grand Slam)’을 턴베리에서 달성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다.

트럼프의 인수 


턴베리는 2014년, 훗날 미국의 45대 대통령이 되는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두바이 기업으로부터 약 6000만 달러에 인수하면서 대대적인 변화를 겪었다. 트럼프는 명칭을 ‘트럼프 턴베리’로 바꾸고 코스 리노베이션에만 약 2억 달러를 투자했다. 2017년 기존 킨타이어(Kintyre) 코스는 ‘킹 로버트 더 브루스 코스’로 새롭게 오픈했고, 클럽하우스는 트럼프 특유의 화려함을 갖추게 되었으며, 기념품점의 금장식 보수기와 하얀 등대의 황금빛 화장실 등 상업적이고 파격적인 시도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경영 성적표는 부진했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트럼프 턴베리는 총 6100만 달러의 적자를 냈으며, 2020년 530만 파운드, 2021년 370만 파운드의 막대한 손실을 기록했다. 2022년에 와서야 18만 6000파운드의 흑자를 냈고, 2023년에 380만 파운드의 수익을 냈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트럼프 측은 골프장 경관을 해친다며 인근 유럽 해상 풍력 발전소(EOWDC) 건설을 막기 위해 영국 대법원까지 소송을 진행했으나 2015년 최종 패소하여 스코틀랜드 정부에 막대한 법률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2019년에는 미군 군용기 승무원들이 프레스트윅 공항을 이용하며 턴베리 리조트에서 약 20만 달러 규모의 숙박을 한 사실이 드러나, 미국 하원이 이해충돌 여부를 집중 조사하기도 했다. 또한 2025년 3월에는 가자지구 통제안에 반대하는 친팔레스타인 운동가들에 의해 코스가 훼손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2025년 7월에는 미국과 EU 간 15% 관세 조항을 포함한 무역 협정이 트럼프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에 의해 바로 이곳 턴베리에서 발표되기도 했다.

디 오픈 개최 자격 박탈과 불확실한 미래 

무엇보다 트럼프의 정치적 행보는 턴베리의 핵심 자산인 ‘디 오픈’ 개최권에 치명타를 입혔다. 턴베리는 2020년 디 오픈 개최지로 매우 유력했으나, 트럼프 대선 후보의 멕시코 이민자 및 무슬림을 겨냥한 인종 차별적 발언이 문제가 되어 대회 주관사인 로열 에인션트 골프클럽(R&A)는 2015년 턴베리를 순회 코스 명단에서 퇴출했다. 2018년 당시 영국 주재 미국 대사가 영국 정부를 상대로 턴베리의 디 오픈 개최를 부당하게 로비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었다 . 결정타는 2021년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이었다. R&A는 대회의 초점이 챔피언십과 선수들에게만 맞춰질 수 있다는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트럼프 소유의 턴베리에서 그 어떤 대회도 개최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못 박았다. 

그러나 2025년 1월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취임 직후, 신임 R&A CEO가 턴베리의 디 오픈 복귀 가능성에 대한 ‘타당성 검토(feasibility work)’를 조심스럽게 진행 중이라고 밝히면서, 이 전설적인 링크스 코스가 다시 한번 세계 최고의 무대로 귀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한 가능성이 열리며 전 세계 골프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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