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북동부의 거친 북해(North Sea)와 맞닿은 애버딘셔(Aberdeenshire)의 해안. 수천 년의 시간과 바람이 빚어낸 이 거대한 모래언덕(Dune) 위에, 도널드 트럼프가 “세계 최고의 골프장”을 세우겠다며 천명한 후 탄생시킨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 링크스(Trump International Golf Links, Scotland)’는 찬사와 논란, 아름다움과 잔혹함이 공존하는 현대 골프의 기념비적 장소다.

제1장: 황량한 모래언덕 위에 싹튼 거대한 야망: “전통의 파괴인가, 완벽을 향한 재창조인가”
스코틀랜드는 골프의 발상지로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지형을 활용하는 ‘링크스(Links)’ 코스의 철학을 신성시해 왔다. 그러나 2006년, 애버딘 북부 발메디(Balmedie) 지역의 1400에이커(약 171만 평) 부지를 매입한 도널드 트럼프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주관하는 디 오픈(The Open) 챔피언십을 개최할 수 있는 10억 파운드(약 1조 7천억 원) 규모의 세계 최고 럭셔리 골프 리조트를 짓겠다고 선언했다.
설계를 맡은 이는 영국의 저명한 코스 설계가 마틴 호트리(Dr. Martin Hawtree)였다. 트럼프는 전통적인 링크스 코스의 불편함을 미국식 자본과 기술로 극복하고자 했다. 기존의 링크스 코스들이 불도저 없이 지형에 맞춰 티박스를 만들고, 여름철 물을 주지 않아 잔디가 누렇게 타들어 가는 것을 방치했다면, 트럼프는 달랐다. 그는 공평하고 완벽한 티박스를 만들기 위해 불도저 사용을 주저하지 않았고, 아낌없이 물을 뿌려 페어웨이를 푸른 융단처럼 가꾸었으며, 불안정한 모래언덕을 고정하기 위해 백만 송이가 넘는 마람그라스(Marram grass)를 심었다.
마침내 2012년 7월 10일, 파72, 전장 7428야드(블랙 티 기준)의 챔피언십 코스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코스 중앙에는 미국 백악관을 연상시키는 하얀 기둥의 클래식한 클럽하우스가 우뚝 섰으며, 피라미드처럼 골프공이 쌓여 있는 광활한 잔디 연습장이 방문객을 맞이했다.

제2장: 대자연과 맞서는 골퍼들의 오디세이: “가장 아름답고도 가혹한 18홀의 순례길”
트럼프 인터내셔널에서의 라운드는 각 홀이 거대한 모래언덕에 의해 완벽히 독립되어 마치 세상에 골퍼 자신들만 남겨진 듯한 고립감과 압도감을 경험하게 된다.
- 위압적인 시작 (1번 홀 ~ 2번 홀): 100피트(약 30미터) 높이로 솟아오른 웅장한 모래언덕 사이로 파5의 1번 홀이 펼쳐진다. 만만해 보일 수 있지만, 오르막 지형과 매서운 바닷바람, 깊은 러프(Fescue)가 도사리고 있다. 2번 홀에서는 티샷부터 크릭(개울)을 넘길 것인지, 안전하게 끊어갈 것인지 가혹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 바다와 맞닿은 절경 (3번 홀): 131야드의 짧은 파3 홀이지만, 시그니처 홀로 꼽힌다. 바다와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어 맑은 날에는 숨 막히는 북해의 풍광을 선사하지만, 거센 맞바람이 불 때는 평소 웨지를 잡을 거리에서도 8번 아이언을 꺼내 들어야 하는 변덕스러운 홀이다.
- 악마의 유혹 (7번 홀): 화이트 티 기준 230야드에 불과한 매우 짧은 파4 홀이다. 누구나 ‘원 온(One-on)’을 노리고 싶어 하지만, 그린이 주변 지형보다 6피트(약 1.8미터) 높이 솟아 있어 샷이 조금만 짧거나 길어도 가차 없이 굴러떨어진다.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정교한 숏게임이 요구되는 홀이다.
- 지뢰밭을 통과하는 귀환 (18번 홀): 여정의 대미를 장식하는 18번 홀은 586야드의 파5 홀로, 무려 18개의 항아리 벙커(Pot bunker)가 페어웨이와 그린 주변에 ‘지뢰’처럼 흩뿌려져 있다. 우측의 워터 해저드와 사방을 둘러싼 벙커를 피해 좁은 길을 개척해야만 클럽하우스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다.
이곳의 잔디 관리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방문객들은 “지금까지 쳐본 코스 중 제일 어렵지만, 제일 좋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그린에서 티박스로 이동하는 길목에는 두껍고 푹신한 미국식 잔디를 식재해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걷는 즐거움을 더했다.

제3장: 서사시의 이면, 거센 저항과 짙은 그림자: “자연의 파괴와 꺾이지 않는 지역 주민들의 투쟁”
눈부신 페어웨이 너머에는 결코 지워지지 않을 깊은 갈등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트럼프의 거대한 야망은 스코틀랜드의 소중한 환경과 지역 공동체를 훼손했다는 뼈아픈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코스가 건설된 발메디 해안은 4000년의 역사를 지닌 역동적인 모래언덕 생태계로, 원래 ‘특별과학관심자연보호구역(SSSI)’으로 지정된 곳이었다. 수많은 환경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 정부는 경제적 이익을 명분으로 개발을 승인했다. 그러나 2019년 스코틀랜드 자연유산청(SNH)은 골프장 건설로 인해 모래언덕 시스템이 ‘부분적으로파괴되고 영구적인 서식지 손실이 발생했다고 판정했으며, 결국 2020년 12월 SSSI 특별 지위가 박탈되는 비극을 맞았다.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은 전 세계적인 논란을 낳았다. 트럼프 측은 코스 확장을 위해 대대로 살아온 주민들의 땅을 강제 수용(Compulsory purchase)하려 시도했고, 조망을 해친다는 이유로 주민의 사유지를 흙더미로 막거나 수도 공급을 끊어버리는 등 거센 압박을 가했다. 마이클 포브스(Michael Forbes), 몰리 포브스(Molly Forbes) 등 지역 주민들은 “트럼프를 엎어버리자(Tripping Up Trump)”는 시민단체를 조직해 결연히 맞섰다. 이 씁쓸한 투쟁의 과정은 2011년 앤서니 백스터(Anthony Baxter)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유브 빈 트럼프드(You’ve Been Trumped)>에 고스란히 담겨 각종 국제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상을 휩쓸었다.
또한 트럼프는 코스 인근 해상에 풍력발전단지가 건설된다는 소식에 “아름다운 경관을 망친다”며 스코틀랜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2012년 개장 이후 매년 막대한 영업 손실을 기록하고 있으며, 2023년에만 115만 파운드(약 19억 원)의 영업 손실과 142만 파운드의 세전 손실을 내며 누적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코스 로고에 새겨진 “절대 포기하지 마라(Nunquam Concedere)”라는 가문의 모토처럼, 트럼프는 숱한 논란과 재정적 출혈 속에서도 이곳을 유지하고 있다.
제4장: 새로운 지평선, 맥레오드 코스의 탄생과 미래:”36홀의 완성, 상생의 길로 접어든 골프 투어리즘”
끝없는 논란 속에서도 트럼프 인터내셔널의 골프 코스로서의 가치는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다. 그리고 2025년 8월, 트럼프의 스코틀랜드인 어머니 매리 앤 맥레오드(Mary Anne MacLeod)의 이름을 딴 ‘맥레오드 코스(MacLeod Course, 또는 뉴 코스)’가 일반에 공식 개장하며 새로운 장을 열었다.
기존 18홀(올드 코스) 옆에 새롭게 조성된 맥레오드 코스는 바닷가 모래 지형의 ‘링크스’ 문법에, 스코틀랜드 내륙의 자연스러운 덤불 지형인 ‘히스랜드(Heathland)’의 특성을 결합하는 파격적인 시도를 선보였다. 페스큐(Fescue), 고스(Gorse), 헤더(Heather)가 어우러지고 기존 링크스에서는 보기 힘든 워터 해저드까지 과감히 배치되었다. 이로써 트럼프 인터내셔널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36홀 중 하나로 진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러피언투어(DP 월드 투어)는 2025년 8월 7일부터 10일까지, 총상금 275만 달러 규모의 ‘스코티시 챔피언십(Scottish Championship)’을 이곳에서 개최했다. 이는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 링크스에서 열리는 최초의 최상위 프로 골프 대회다.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 인터내셔널의 등장이 지역 전체의 골프 투어리즘을 부흥시켰다는 사실이다. 세인트 앤드루스나 카누스티에 주로 머물던 세계의 골프 순례자들이 이제 트럼프 인터내셔널을 경험하기 위해 애버딘 지역으로 기꺼이 발길을 돌리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인근의 명문 구장인 ‘로열 애버딘(Royal Aberdeen)’과 ‘크루덴 베이(Cruden Bay)’의 방문객 수요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생 효과를 낳고 있다.
에필로그: 완벽주의와 오만이 빚어낸 현대 골프의 걸작
값비싼 그린피와 험난한 러프 지옥에도 불구하고, 매년 수많은 골퍼가 이곳을 찾는다. 영국의 유력 골프 리뷰 사이트인 골프쉐이크(Golfshake)에서는 41건의 평가 중 94%가 “다시 플레이하거나 추천하겠다”고 응답하며 5점 만점에 4.9점이라는 만족도를 기록했다.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 링크스는 한 억만장자의 불도저 같은 집념과 오만이 만들어낸 환경 훼손의 상징이자, 동시에 돈과 기술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대자연의 거친 캔버스 위에 그려낸 현대 골프 건축의 걸작이다.
스코틀랜드 북해의 바람은 오늘도 거세게 분다. 골프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골프장인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 링크스가 세워지기까지 겪어야 했던 수많은 갈등과 투쟁의 서사시를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