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드림’을 향한 끈질긴 도전 끝에,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역사상 최초의 태국인 우승자가 탄생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한국 음식 중 삼겹살을 가장 좋아한다는 짜라위 분짠(태국)이다.

분짠은 24일 경기도 여주시 페럼 클럽(파72)에서 열린 KLPGA 투어 E1 채리티 오픈(총상금 10억 원) 최종 라운드에서 버디 3개와 보기 1개를 묶어 2언더파 70타를 치며, 최종 합계 10언더파 206타로 정상에 올랐다. 2위인 이율린(8언더파 208타)을 2타 차로 따돌린 완벽한 우승이었다. 

이번 우승으로 분짠은 KLPGA 투어에서 태국 선수 최초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새 역사를 썼으며, 우승 상금 1억 8000만 원과 함께 2028년까지 KLPGA 투어의 모든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귀중한 풀시드 자격까지 손에 넣었다.

그의 우승은 KLPGA 투어 역사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외국인 선수가 KLPGA 투어에서 우승한 것은 지난해 중국의 리슈잉에 이어 역대 12번째이지만, 한국계 연고나 거주 경험이 전혀 없는 순수 외국인 선수의 우승은 2005년 줄리 잉스터(미국) 이후 무려 21년 만이다. 잉스터 이후 우승했던 리디아 고, 노무라 하루, 리슈잉 등은 모두 한국인 부모를 두었거나 한국에서 자란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무대에서 한국 무대로: 끊임없는 도전의 여정 분짠의 골프 인생은 화려한 아마추어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미국 명문 듀크대 골프부 출신인 그는 대학 골프 올스타에 4번이나 선정되고 대학 골프 팀 우승을 이끄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2022년 LPGA의 2부 투어인 엡손투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낸 그는 2023년 마침내 LPGA 투어 풀시드 선수로 발돋움하며 미국 정규 투어를 누볐다. 하지만 2024년 아쉽게 LPGA 투어 풀시드를 잃는 시련을 겪었고, 이후 분짠은 과감하게 진로를 바꿔 KLPGA 투어로 눈을 돌렸다.

외국인 대상 인터내셔널 퀄리파잉 토너먼트를 거쳐 KLPGA 무대에 입성한 분짠은 이번 우승으로 KLPGA 역사상 인터내셔널 퀄리파잉 출신 외국인 최초 우승이라는 진기록도 함께 세웠다. 데뷔 첫해였던 지난해에는 17개 대회에 출전해 상금 랭킹 92위에 머물며 낯선 투어 환경에 고전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다시 한번 치열한 시드전을 거쳐 15위의 성적으로 KLPGA 투어 출전권을 따냈다. 절치부심하며 쇼트게임 향상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그는 마침내 한국 무대 진출 28번째 대회 만에 감격스러운 첫 정규 투어 우승의 결실을 보았다.

치열했던 최종 라운드, 그리고 돋보인 고도의 집중력 2타 차 단독 선두로 최종 라운드를 출발한 분짠에게 우승 가는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4번 홀(파4)에서 3퍼트로 보기를 범하며 주춤하는 사이, 맹렬하게 추격해 온 이율린에게 1타 차, 이어 공동 선두까지 허용하는 등 살얼음판 같은 승부가 이어졌다. 하지만 분짠의 진가는 위기 상황에서 더욱 빛났다. 11번 홀(파4)에서 4.5m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한숨을 돌린 데 이어, 12번 홀(파5)에서도 세 번째 샷을 홀 2.4m에 붙여 연속 버디를 낚으며 다시 2타 차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갔다.

치열한 선두 경쟁 속에서도 분짠은 우승에 대한 압박감을 내려놓고 오직 자신의 플레이에만 온전히 집중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는 “최종 라운드 동안 코스에 리더보드가 많지 않았고, 우승이나 순위를 생각하기보다는 내 게임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고 털어놓았다. 17번 홀에서는 캐디를 향해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는 제스처를 취해 본인이 2타 차 선두임을 인지한 것이 아니냐는 유쾌한 오해도 있었지만, 분짠은 “스스로 좋은 퍼팅을 했다고 생각해서 지어 보인 포즈였을 뿐”이라며 웃음 지었다. 이후 마지막 18번 홀(파5)에서 편안하게 투 퍼트로 파를 기록하며 그는 최종 합계 10언더파 206타로 2타 차 우승을 확정 지었다. 분짠과 이율린의 뒤를 이어 서교림이 이다연과 함께 공동 3위(7언더파 209타)에 올랐고, 통산 20승 대기록에 도전했던 박민지는 정소이와 공동 7위(5언더파 211타)로 대회를 마감했다.

챔피언의 따뜻한 소망, “더 많은 태국 선수가 한국에 도전하길” 현재 하나금융그룹의 든든한 후원을 받고 있는 분짠은 한국 생활에 완벽히 적응한 모습이다. “한국에서는 아무 어려움 없이 경기를 하고 있다”고 밝힌 그는 “지난해엔 적응이 좀 덜 됐지만, 올해는 적응을 마치고 즐겁게 경기한 게 우승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지난 2월 열린 KLPGA 드림 윈터투어 인도네시아 여자오픈에서도 이미 우승컵을 들어 올렸던 그는 이번 정규 투어 우승까지 거머쥐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그의 연인인 태국 프로골퍼 사돔 깨우깐짜나가 지난해 코오롱 한국오픈에서 우승했다는 사실이다. 이번 분짠의 우승으로 두 사람은 한국 남녀 정규 골프 투어 무대에서 동반 우승을 차지한 최초의 태국 남녀 프로골퍼 커플이라는 로맨틱한 타이틀까지 얻게 되었다.

분짠은 자신의 우승이 개인적인 영광을 넘어 고국의 후배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는 “내게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 같다. 태국 선수 최초로 KLPGA 투어에서 우승을 하게 되어 정말 기쁘다”고 벅찬 소감을 밝히며, “이번 우승이 다른 태국 선수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현재 한국 생활이 너무 즐겁기 때문에 더 많은 태국 선수들이 나처럼 한국 무대에 적극적으로 도전하기를 바란다”는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미국에서의 좌절을 딛고 한국에서 화려하게 비상한 짜라위 분짠. 처음엔 KLPGA 투어 시드 유지가 목표였다던 그의 올 시즌 목표는 이제 “우승을 더 보태고 싶다”는 당찬 포부로 바뀌었다. KLPGA 투어에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태국인 챔피언의 다음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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