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충남 천안 우정힐스 컨트리클럽(파71)에서 열린 코오롱 제68회 한국오픈 최종 라운드, 18번 홀에서 세 번째 샷을 그린에 올린 양지호(37)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떨리는 챔피언 퍼트를 마침내 성공시킨 그는 결국 참았던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다. 양지호는 이날 5타를 잃었으나 최종 합계 9언더파 275타를 기록하며, 내셔널 타이틀 대회인 한국오픈 역사상 최초로 예선 통과자 출신 우승이라는 빛나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2006년부터 예선 제도가 도입된 한국오픈에서 예선을 거쳐 우승을 차지한 선수는 양지호가 처음이다. 올해 15명이 예선을 통해 출전권을 따냈고, 양지호는 예선 18위에 머물러 출전이 불발될 위기였지만 결원이 생기면서 출전 기회를 잡았다. 1라운드부터 단 한 번도 선두를 내주지 않은 대회 사상 14번째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 기록까지 세우며 개인 통산 3승째를 달성했다. 특히 우승 상금 5억 원에 주최 측의 특별 우승 상금 2억 원을 더해 총 7억 원의 잭팟을 터뜨린 그는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긴장감 넘쳤던 승부처와 가족을 향한 절절한 진심을 쏟아냈다

■ “아침에 헛구역질 날 정도”… 극도의 중압감 이겨낸 ‘좀비 골프’의 진수

3라운드까지 2위에 7타나 앞선 압도적 선두였음에도 챔피언 조가 짊어져야 할 중압감은 베테랑에게도 무척 가혹했다. 양지호는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오늘 코스에 나가기 전부터 좀 많이 무서웠다”며 “아침에 밥도 안 들어가고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경기 초반에 ‘무너지면 어쩌지’하는 생각이 들어 스트레스가 무척 컸다”고 솔직한 심경을 고백했다. 실제로 1번 홀과 2번 홀에서 샷이 흔들리며 연속 보기를 범했고, 앞 조에서 경기하던 왕정훈이 2~4번 홀 연속 버디를 솎아내며 4타 차까지 맹렬히 추격해 오는 최대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팬들 사이에서 끈질기게 버틴다고 하여 붙여진 ‘좀비 골프’라는 별명답게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가 꼽은 위기 극복의 비결은 긍정적인 마인드였다. 양지호는 “제가 보기를 할 때 같이 치는 다른 선수들도 주춤해 줘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며 “최근 우정힐스 그린이 많이 바뀌어서 선수들이 까다롭다고 하던데, 저는 반대편에서 봤을 때 오히려 단순하게 보이더라. 1라운드에 그게 잘 돼서 계속한 것이 잘 맞아떨어졌다”고 자평했다.

승부의 쐐기를 박은 가장 극적인 장면은 9번 홀(파4)에서 터진 기적 같은 칩인 버디였다. 양지호는 당시 상황에 대해 **“솔직히 어프로치가 약간 강하게 들어갔는데 방향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이번 주는 무언가 이상하게 나를 도와줄 거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는데 그게 그대로 홀에 들어가 버렸다”며 “너무 놀라기도 했고, 정말 힘을 많이 얻은 어프로치였다”**고 짜릿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중계진 역시 양지호 선수의 캐디가 “최근 3주 동안 경기가 안 풀릴 때 긴 퍼트가 한 번씩 들어간 적이 많아 운이 따르는 것 같다”고 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번 대회를 돌아보며 “신기할 정도로 모든 기운이 저에게 온 것 같다”고 밝힌 그였지만,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결정적인 승부처가 9번 홀이었나”라는 질문에 그는 **“아니요, 저는 18번 홀 서드 샷을 칠 때까지도 계속 긴장을 놓고 있지 않았다. 마지막 세 번째 샷을 올리고 나서 걸어오면서 좀 울컥했고, 마지막에는 눈물의 퍼팅을 했던 것 같다”**며 피 말리던 승부의 압박감을 털어놓았다. 반면 맹렬히 추격하던 왕정훈은 9번 홀 보기에 이어 10번 홀 보기, 11번 홀 더블 보기로 연달아 무너지며 양지호는 완벽하게 승기를 굳힐 수 있었다.

■ 10만 원의 대리운전, 아내의 내조와 뱃속의 ‘무럭이’

한국오픈 챔피언이라는 기적의 이면에는 아내 김유정 씨의 헌신적인 내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직전 대회인 파운더스컵 최종 라운드 챔피언 조에서 타수를 잃고 공동 17위로 미끄러진 뒤 크게 낙담했던 그는 당초 춘천에서 열리는 한국오픈 예선에 출전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양지호는 “파운더스컵을 마치고 올라가는 길에 기분이 무척 좋지 않았다. 침울하고 몸도 힘들어서 예선에 꼭 가야 하나 싶었는데, 아내에게 얘기하니 곧바로 대리운전 기사님을 불러줬다”고 비하인드를 밝혔다. 이어 “대리비가 10만 원이 나왔는데, 기사님이 운전해 주신 덕분에 푹 쉬면서 예선장으로 갈 수 있었다”며 “아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아내에게 감사를 표했다. 

과거 남편의 두 차례 우승 당시 직접 캐디로 나서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했던 아내는 현재 임신 중이라 이번 대회엔 갤러리로 함께하며 남편의 3년 만의 우승을 지켜봤다. 양지호는 “아내는 본인이 저를 만들었다고 한다. 자신이 이번엔 캐디를 맡지 않게 되자 걱정이 컸다던데, 보란 듯이 챔피언의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 미소 지어진다”고 흐뭇해했다.

특히 오는 11월 출산 예정인 뱃속 아기의 태명 ‘물럭이’를 향한 애틋한 사랑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항상 힘들 때마다 물럭이를 생각하면서 버텼다. 배 속의 아기와 함께 다녀주면서 마음이 따뜻해졌고 덕분에 좋은 경기를 했다”며 “아빠가 몸 관리 잘해서 11월에 건강하게 만나자”고 영상 편지를 남겼다. 또한 “코스에서 예민해질 때 나 같은 놈이 뭐라고 다 맞춰주고 받아준 아내에게 안쓰럽고 미안하기도 했다. 부모님도 군말 없이 지켜봐 주시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오늘 드디어 보답을 한 것 같아 너무 뿌듯하다”며 묵묵히 응원해 준 가족을 향한 짙은 감사를 전했다.

■ 디오픈 진출과 7억 원의 잭팟… “투어 시드 연장, 아이와 함께 다닐 수 있어 최고”

양지호는 이번 한국오픈 제패에 대해 “솔직히 상상조차 못 해봤던 대회다. 이렇게 큰 시합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플레이해 우승을 해낼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 해봤고,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며 깊은 감동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그를 가장 기쁘게 한 건 KPGA 투어 5년 시드 플래그를 확보한 점이다. 그는 “올해 혹시라도 시드를 잃었다면 태어날 아기에게 제가 투어에서 뛰는 자랑스러운 아빠의 모습을 못 보여줄 수도 있었을 텐데, 5년 시드를 받게 돼 앞으로 아이와도 함께 투어를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행복하다. 향후 5년 계획을 다시 짜봐야 할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여기에 더해 오는 7월 영국 잉글랜드 로열 버크데일 골프클럽에서 열리는 제154회 디오픈 챔피언십 출전권이라는 영광의 메이저 티켓도 거머쥐었다. 첫 메이저 대회 출전에 대해 그는 “골프 선수로 몇십 년을 해오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대회 한 번은 가봐야 하지 않나 싶었는데 이렇게 가게 돼 정말 믿기지 않는다”며 “처음엔 출전에 의의를 두겠지만, 막상 가면 선수니까 잘하고 싶을 것 같다. 욕심은 부리지 않되 내 플레이를 잘하고 오겠다”고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이번 대회의 총상금은 본래 LIV 골프의 후원으로 20억 원으로 증액되었다가 후원 중단 사태로 14억 원으로 환원된 바 있다. 하지만 대회 조직위원회가 선수와 팬들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2억 원의 특별 우승 상금을 추가하면서, 양지호는 우승 상금 5억 원을 포함해 총 7억 원의 잭팟을 품에 안게 되었다. 이 거액의 상금 사용 계획에 대해 그는 “우선은 저축해서 아이가 태어나면 뒷바라지해야 하지 않겠나”라면서도 “아내에게는 뭐든지 다 해줄 수 있다. 최근에 아내가 ‘집이 좀 좁다’고 하던데 이사 자금으로 보태도 될 것 같다”며 아내와 아이를 향한 무한한 애정을 과시했다.

“이제 정말 홀가분하고 두 발 뻗고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며 후련한 웃음을 지어 보인 챔피언 양지호. 끝으로 그는 시종일관 열렬한 응원을 보내준 골프 팬들을 향해 “오늘 응원을 정말 많이 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 사실 시합에 극도로 집중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팬들한테 환하게 인사를 못 해 못내 아쉬웠다”며 “이제 우승을 이뤘으니, 다음에 대회장에서 만날 때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겠다”고 따뜻한 인사를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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