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모리얼 토너먼트는 공식적으로는 메이저 대회가 아니다. 하지만 선수들은 오래전부터 이 대회를 ‘메이저급 대회’ 가운데 하나로 불러왔다. 높은 상금과 강력한 출전 선수층 때문만은 아니다. ‘골프의 전설’ 잭 니클라우스가 주최하는 대회이기도 하지만 메모리얼이 더 특별한 이유는 개최 코스인 뮤어필드 빌리지 골프클럽(Muirfield Village Golf Club)에 있다.

올해 대회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2라운드가 열린 지난 6일(현지시각), 세계 최고의 선수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는 “오늘 90타를 칠 줄 알았다”고 털어놓았고, 저스틴 토머스는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려운 라운드 가운데 하나였다”고 말했다. 토미 플리트우드는 “잔혹했다(brutal)”는 표현을 사용했다. 평소라면 우승 경쟁을 펼칠 선수들이 컷 통과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그런 혹독한 무대에서 끝내 살아남은 선수는 J.T. 포스턴(미국)이었다.

포스턴은 미국 오하이오주 더블린의 뮤어필드 빌리지에서 6월7일(현지시각) 막을 내린 대회에서 최종합계 12언더파 276타를 기록한 뒤 라이언 제라드(미국)와 연장 승부를 벌였다. 승부는 18번 홀에서 이어진 두 번째 연장에서 갈렸다. 포스턴은 침착하게 파를 지켜내며 우승을 확정했다. 2024년 슈라이너스 칠드런스 오픈 이후 약 1년 8개월 만의 우승이자 PGA 투어 통산 4승째다.

윈덤 클라크가 11언더파로 3위에 올랐고, 토미 플리트우드와 샘 번스가 10언더파 공동 4위를 기록했다. 셰플러와 로리 매킬로이는 나란히 공동 12위(4언더파)에 머물렀다. 한국 선수 김시우는 최종 라운드에서 6언더파 66타를 몰아치며 공동 10위에 올라 시즌 8번째 톱10을 달성했다.

이번 대회를 이해하려면 우승자보다 먼저 코스를 봐야 한다.

뮤어필드 빌리지는 PGA 투어를 대표하는 설계가의 작품이 아니라, 역대 최고의 선수 가운데 한 명인 잭 니클라우스가 자신의 골프 철학을 직접 구현한 무대다. 니클라우스는 1966년 디 오픈 우승 당시 스코틀랜드의 명문 코스 뮤어필드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후 고향인 오하이오주에 자신의 이상을 담은 챔피언십 코스를 만들겠다는 꿈을 품었다.

1974년 개장한 뮤어필드 빌리지는 그렇게 탄생했다. 뮤어필드 빌리지는 메모리얼 토너먼트의 무대일 뿐 아니라 세계 골프사의 주요 단체전이 열린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1987년 라이더컵, 1998년 솔하임컵, 2013년 프레지던츠컵을 개최하며 남녀 골프의 대표 국가대항전을 모두 치른 세계 최초의 코스로도 유명하다.

흥미로운 점은 니클라우스가 은퇴 후 설계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현역 선수로 활약하던 전성기에 코스를 설계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후에도 수십 년 동안 지속적으로 코스를 손봤다. 실제로 2021년에는 거의 모든 그린과 벙커를 새롭게 만드는 대규모 리노베이션을 단행했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잭이 매년 코스를 조금씩 더 어렵게 만든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뮤어필드 빌리지는 단순히 어려운 코스가 아니다.

니클라우스의 설계 철학은 의외로 단순하다.

“정확한 샷을 친 선수에게 보상하라.”

뮤어필드 빌리지의 모든 홀은 이 한 문장을 중심으로 설계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타의 대명사였던 니클라우스지만 코스 설계에서는 힘보다 정확성을 강조했다. 그래서 뮤어필드 빌리지는 드라이버 비거리보다 공을 정확한 위치에 보내는 능력을 중요하게 평가한다.

첫 번째 관문은 티샷이다.

페어웨이는 보기보다 넓지 않다. 특히 선수들이 공을 떨어뜨리는 랜딩 존은 전략적으로 설계돼 있다. 조금만 벗어나도 깊은 러프가 기다린다. 이번 대회에서 셰플러가 “정확한 위치에 공을 보내지 못하면 곧바로 문제가 시작된다”고 말한 이유다.

하지만 진짜 승부는 두 번째 샷에서 시작된다.

뮤어필드 빌리지의 그린은 벙커와 경사면으로 철저하게 보호된다. 단순히 그린에 공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느 쪽에서 그린을 공략하는지, 핀과의 각도를 어떻게 만드는지까지 고려해야 한다. 잘못된 위치에서 공략하면 버디 기회는커녕 파를 지키기도 쉽지 않다.

여기에 메모리얼 특유의 코스 세팅이 더해졌다.

올해 대회 기간에는 강풍이 끊임없이 방향을 바꿔가며 불었다. 선수들은 같은 홀에서도 몇 분 사이 전혀 다른 클럽을 선택해야 했다. 플리트우드는 같은 조에서 경기한 캐머런 영이 160야드 거리에서 8번 아이언을 잡은 직후, 자신은 웨지를 잡아야 했던 상황을 소개하며 “정말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린은 더욱 잔인했다.

뮤어필드 빌리지의 그린은 원래 빠른 편이지만 이번 주에는 바람과 햇빛 영향으로 더욱 단단하게 말랐다. 선수들은 “바삭바삭할 정도로 말랐다(crispy)”고 표현했다.  공이 그린에 떨어져도 쉽게 멈추지 않았고, 조금만 방향을 잘못 잡아도 순식간에 긴 파 퍼트가 남았다.

2라운드 결과는 이런 난도를 그대로 보여줬다.

조던 스피스는 79타, 리키 파울러는 82타를 기록하며 컷 탈락했다. 제이슨 데이 역시 주말 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언더파를 기록한 선수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토머스는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경기했지만 정말 잔혹했다”고 말했다. 그는 라운드가 끝난 뒤 함께 경기한 로리 매킬로이와 악수 대신 포옹을 나누기도 했다. 토머스는 “서로를 바라봤는데 둘 다 포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처럼 뮤어필드 빌리지는 매년 최고의 선수들을 시험한다.

단순히 장타를 치는 선수나 퍼팅이 좋은 선수보다, 실수를 줄이고 인내심을 유지하며 전략적으로 코스를 공략하는 선수를 원한다. 니클라우스가 현역 시절 보여줬던 골프와 정확히 같은 방식이다. 그는 공격적인 플레이로 유명했지만, 동시에 큰 실수를 하지 않는 경기 운영의 달인이기도 했다.

결국 올해 메모리얼 우승자는 그런 철학을 가장 잘 구현한 선수였다.

포스턴은 화려한 장타나 압도적인 버디 행진보다 안정적인 경기 운영으로 우승 경쟁을 이어갔다. 위험한 상황을 최소화했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연장전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뮤어필드 빌리지의 우승 트로피는 결국 니클라우스가 설계한 ‘정확성의 시험장’을 가장 잘 통과한 선수에게 돌아간다. 

올해 그 이름은 J.T. 포스턴이었다. 그리고 메모리얼 토너먼트는 다시 한번 골프가 결국 힘의 경기가 아니라 정확성과 인내, 그리고 판단력의 경기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Leave a comment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