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서독 월드컵. 자이르는 사하라 이남 흑인 아프리카 국가 최초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식민지 시대를 끝내고 독립을 이룬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월드컵은 단순한 축구 대회가 아니었다. 세계를 향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무대였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자이르는 스코틀랜드에 0-2, 브라질에 0-3, 유고슬라비아에 0-9로 무너지며 14실점 무득점이라는 참담한 기록을 남겼다. 당시 대표팀은 독재 정권의 정치적 선전 도구로 활용됐고, 대회 기간에는 포상금 지급 문제까지 불거지며 혼란을 겪었다. 결국 세계 축구의 조롱거리가 되며 퇴장했다.
반세기가 흐른 뒤 이름을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바꾼 그 나라가 다시 월드컵 무대에 섰다. 포르투갈과 비기며 역사상 첫 승점을 따냈다. 한때 세계 무대의 구경꾼이었던 나라가 이제는 우승 후보를 상대로 맞서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아프리카는 오래전부터 세계 축구의 미래로 불렸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카메룬은 아프리카 최초로 8강에 올랐다. 로저 밀라는 골을 넣을 때마다 코너플래그 앞에서 엉덩이 춤을 췄고, 전 세계는 그 자유롭고 강렬한 에너지에 매료됐다. 잉글랜드와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를 벌이며 유럽 축구의 자존심을 흔들었다.
나이지리아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슈퍼 이글스’라는 별명처럼 거침없는 공격 축구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예키니와 카누, 오코차 같은 스타들은 아프리카 축구의 상징이 됐다. 뛰어난 신체 능력과 기술, 넘치는 재능을 지켜보며 많은 사람들은 언젠가 월드컵 우승컵이 아프리카 대륙으로 향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른바 ‘아프리카 대망론’이었다.
하지만 그 꿈은 생각보다 멀리 있었다.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재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정치가 축구에 개입했고, 축구협회는 권력 다툼의 무대가 됐다. 대표팀은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도 보너스 문제로 갈등을 반복했다. 유럽이 유소년 육성과 지도자 교육에 투자하고, 최근에는 미국과 아시아 국가들까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춰 가는 동안 많은 아프리카 국가는 제자리걸음을 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그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나라다. 인구 1억 명이 넘는 아프리카의 대국이자 세계 최대 코발트 생산국이다. 구리와 금, 다이아몬드 등 풍부한 자원을 보유한 나라지만 내전과 정치적 불안, 부패와 ‘자원의 저주’에 시달려 왔다. 독립 이후 이어진 분열과 갈등의 배경에는 벨기에 식민 통치가 남긴 상처와 인위적으로 그어진 국경선의 문제도 자리하고 있다. 축구 역시 이런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아프리카 축구를 움직이는 힘은 다소 역설적이다.
카보베르데와 콩고민주공화국 대표팀의 상당수 선수들은 포르투갈과 프랑스, 벨기에, 잉글랜드에서 성장했다. 조국이 아닌 곳에서 축구를 배웠지만 결국 조국의 유니폼을 입었다. 과거 식민지와 이민의 역사가 오늘날에는 축구 경쟁력의 한 축이 된 셈이다. 아프리카 축구의 새로운 희망이 아이러니하게도 디아스포라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카보베르데가 스페인과 비긴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인구 52만 명의 작은 섬나라. 세계 지도에서 찾기도 쉽지 않은 나라가 무적함대를 멈춰 세웠다. 경기 후 선수들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축구가 때로는 한 나라의 희망을 대신 보여주는 언어라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감동은 출발점일 뿐이다.
한국도 한때는 자이르 못지않은 월드컵 약체였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헝가리에 0-9, 터키에 0-7로 패하며 16실점 무득점으로 대회를 마쳤다. 당시 한국 역시 전쟁의 상처와 가난 속에 있었다. 그러나 이후 경제 성장과 교육 수준 향상, 프로축구 출범, 유소년 육성을 통해 경쟁력을 쌓았고 결국 2002년 월드컵 4강이라는 결실을 얻었다.
일본은 그 과정을 지켜보며 더 길고 일관된 계획을 세웠다. 오늘날 일본 축구의 경쟁력은 선수 몇 명의 재능이 아니라 축구 철학과 행정, 교육 시스템이 함께 만든 결과다.
아프리카가 진정으로 월드컵 우승에 도전하려면 경기장 밖의 문제와 먼저 싸워야 한다. 반세기 전 자이르를 무너뜨렸던 정치 개입과 부패, 취약한 행정과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 때 비로소 오랫동안 이야기되던 ‘아프리카 대망론’도 현실이 될 것이다.
카보베르데와 콩고민주공화국은 이번 월드컵에서 꿈이 아직 살아 있음을 보여줬다. 그 꿈을 현실로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길고 어려울 것이다.
아프리카 축구의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이다.
축구는 축구만으로 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