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AI에게 축구팀을 만들라고 명령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최고의 운동 능력을 가진 선수(머신)들을 모아 가장 효율적으로 공간을 압박하고, 공을 빼앗는 즉시 가장 빠른 경로로 골문을 향해 돌진하라고 입력한다면 말이다.
북중미 월드컵 공동 개최국 캐나다의 최근 경기를 보면 그 답에 가까운 장면을 발견하게 된다.
캐나다는 1차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전에서 1-1로 비겼지만 인상적인 공격 본능을 보여줬다. 그리고 카타르와의 2차전에서는 마치 “무자비한 축구란 이런 것”이라고 선언하듯 상대를 몰아붙였다. 6-0이라는 스코어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경기 내용이었다. 이미 승부가 기운 뒤에도 압박은 멈추지 않았고, 선수들은 추가 골을 넣기 위해 계속 전진했다.
사실 이 승리는 캐나다 축구 역사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캐나다는 처음 본선 무대에 진출한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3전 전패(무득점), 36년 만에 다시 밟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3전 전패했다. 카타르전 6-0 승리는 캐나다의 월드컵 본선 역사상 첫 승리였다. 그런데도 선수들은 잠시의 도취도 없이 다음 골을 넣기 위해 더 거세게 달려들었다.
경기를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저렇게까지 할까. 저러다 상대 선수의 감정이 폭발해 거친 보복성 태클이라도 나오면 어떻게 하려고. 보통 팀들은 크게 앞서면 템포를 늦추고 체력을 아낀다. 그러나 캐나다는 오히려 마지막 휘슬이 울릴 때까지 강도를 유지했다.
그 배경에는 현재 캐나다 축구를 이끄는 제시 마시(Jesse Marsch) 감독의 철학이 있다.
미국 출신인 마시는 미국 축구가 배출한 가장 성공한 지도자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와 독일 라이프치히 등 레드불 그룹 구단에서 지도력을 인정받았고, 현대 압박 축구의 최전선에서 경험을 쌓았다. 한국의 월드컵 대표팀 감독 후보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던 인물이다.
그의 축구는 단순하면서 동시에 매우 정교하다. 상대가 공을 잡는 순간 곧바로 압박하고, 탈취하면 최소한의 패스로 골문까지 도달한다. 점유율을 위한 점유율보다 공격을 위한 압박을 우선한다.
이른바 ‘레드불 DNA’다.
기술적으로 보면 캐나다는 상대 풀백이나 측면 수비수에게 공이 전달되는 순간을 압박 신호로 삼는다. 공격수와 측면 자원이 동시에 달려들어 패스 선택지를 차단하고, 중앙 미드필더는 전진해 상대의 탈압박 경로를 막는다. 수비 라인은 하프라인 근처까지 끌어올린다. 상대 진영 전체를 전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공을 빼앗은 뒤도 독특하다. 일반적인 팀들이 패스를 돌리며 공격을 설계한다면 캐나다는 공을 탈취한 후 5~10초 안에 슈팅까지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알폰소 데이비스의 폭발적인 스피드와 조나단 데이비드의 침투 능력이 여기에 결합하면서 공격은 거의 카운터펀치처럼 날아든다.
최근 북미 언론은 이런 축구를 ‘메이플프레싱(Maplepressing)’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캐나다의 상징인 메이플과 압박 축구를 합친 신조어다. 단순한 별명이 아니다. 실제로 현재 캐나다는 세계 축구에서도 가장 에너지 레벨이 높은 팀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전술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이런 축구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선수들이다.
캐나다는 지금 역대 최고의 황금세대를 보유하고 있다. 바이에른 뮌헨의 알폰소 데이비스는 세계 최고 수준의 스피드를 자랑한다. 조나단 데이비드는 유럽 정상급 공격수로 성장했다. 여기에 이스마엘 코네, 알리스테어 존스턴, 사이클 라린 등 유럽 무대에서 경쟁력을 입증한 선수들이 포진해 있다.
마시 감독은 이들의 신체 능력을 하나의 방향으로 묶어냈다. 빠른 선수들을 모은 것이 아니라 90분 동안 같은 강도로 압박하고 질주하는 집단으로 재설계한 것이다. 그리고 유럽에 있는 선수들을 찾아 다니고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며 하나의 가족을 만들었다.
3골을 넣어도 4번째 골을 원하고, 4골을 넣어도 5번째 골을 노리는 캐나다 선수들의 모습은 단순한 승부욕이 아니다. 공동 개최국으로 참가한 2026년 월드컵에서 사상 첫승이 아니라, 우승 경쟁에 뛰어들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다.
그래서 사실상 승부가 끝난 뒤에도 훈련하듯 집요하게 자신의 축구를 반복한다. 압박 강도를 낮추는 순간 습관이 무너진다고 믿는다. 한 경기 한 경기를 월드컵 결승전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영국 가디언은 카타르전 이후 캐나다를 “갑자기 위험한 팀이 된 캐나다(Suddenly Dangerous Canada)”라고 표현했다. 한때 월드컵 첫 승조차 없던 나라가 이제는 강호들이 피하고 싶은 상대가 됐다는 의미였다.
물론 약점도 있다. 높은 수비 라인 뒤 공간은 여전히 위험 요소다. 세계 정상급 팀을 만나면 한 번의 침투 패스에 무너질 수 있다. 후방 빌드업의 안정성 역시 개선 과제로 꼽힌다.
그럼에도 현재 캐나다는 세계 축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실험 가운데 하나다.
황금세대의 피지컬, 숨돌릴 틈 없는 공격 본능을 장착한 레드불식 압박 축구, 그리고 월드컵 우승까지 바라보는 높은 기준이 결합했다. 지금의 캐나다는 ‘북미의 압박 머신’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팀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두려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듯한 이들의 축구가 재미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