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점잖은 사람이었다. 거스 히딩크가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휘어잡는 지도자였다면, 그는 조용히 전술판을 들여다보는 현실주의자에 가까웠다. 기자회견에서도 목소리를 높이는 법이 거의 없었다. 화려한 비전보다 조직력과 규율, 그리고 결과를 이야기하는 감독이었다.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축구계를 떠났을 나이. 하지만 1947년생, 올해 79세가 된 아드보카트는 여전히 벤치에 앉아 있다. 이번에는 인구 15만 명의 카리브해 작은 섬나라 큐라소다.

축구계에서 아드보카트의 별명은 ‘작은 장군(Little General)’이다. 키는 크지 않지만 강한 통솔력과 원칙적인 지도 방식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네덜란드 대표팀과 PSV 에인트호번, 레인저스,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한국 대표팀 등 수많은 팀을 이끌며 유럽 축구계에서 한 시대를 대표한 지도자다.

아드보카트가 큐라소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것은 2024년. 이미 은퇴를 선언한 뒤였다. 그러나 그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우승 후보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작은 나라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프로젝트였다.

큐라소는 카보베르데보다도 훨씬 작은 나라다. 카보베르데 인구가 약 52만 명인 반면 큐라소는 15만 명 수준이다. 독립국가도 아니고 네덜란드 왕국의 자치령이다. 인구 규모만 놓고 보면 이번 월드컵 참가국 가운데 가장 작다.

아드보카트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큐라소에서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축구가 여전히 재미있기 때문이다.”

사실 큐라소의 월드컵 본선 진출 자체가 놀라운 성과였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은 미국·멕시코·캐나다가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출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길이 쉬워진 것은 아니었다. 코스타리카, 파나마, 자메이카, 온두라스 등 월드컵 경험이 풍부한 국가들이 여전히 경쟁하고 있었다. 인구 15만 명의 섬나라가 이런 경쟁을 뚫고 본선 티켓을 따냈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웠다.

큐라소는 네덜란드와의 역사적 연결고리를 활용했다. 유럽에서 성장한 디아스포라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대표팀에 합류시켰고, 아드보카트는 이들을 조직력 있는 팀으로 묶어냈다. 스타 선수는 많지 않았지만 수비 조직과 전환 속도, 세트피스 완성도를 높이며 꾸준히 경쟁력을 키웠다.

그는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뒤 이렇게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를 월드컵에 데려간 것은 내 경력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그리고 이번 월드컵에서도 역사를 썼다.

첫 경기에서 독일에 1-7로 패했을 때만 해도 냉혹한 현실이 드러나는 듯했다. 그러나 두 번째 경기에서 에콰도르를 상대로 0-0 무승부를 기록하며 사상 첫 승점을 따냈다.

월드컵 역사상 큐라소가 획득한 첫 승점이었다.

이날 경기의 주인공은 골키퍼 엘로이 룸이었다. 15개의 선방을 기록했다. 에콰도르는 27개의 슈팅을 퍼부었지만 끝내 룸이 지킨 골문을 열지 못했다. 네덜란드계와 카리브계 혈통을 가진 룸은 미국 MLS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베테랑 골키퍼다. 외신들은 그의 선방쇼를 이번 대회 최고의 골키퍼 퍼포먼스 가운데 하나로 평가했다.

아드보카트는 경기 후에도 크게 흥분하지 않았다. 독일전 대패 뒤에도, 역사적인 첫 승점을 얻은 뒤에도 그는 늘 그랬다. 해야 할 일을 이야기했고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아드보카트와 큐라소는 월드컵 우승을 꿈꾸는 위치에 있지 않다. 대신 인구 15만 명의 나라가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만났던 아드보카트를 나는 현실주의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니 내가 잘못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은퇴를 하고도 한참 지난 나이에 인구 15만 명의 섬나라를 이끌고 월드컵에 도전하는 일은 결코 현실적인 선택이 아니다.

축구가 재미있다는 이유 하나로 역대 최고령 월드컵 감독으로 다시 벤치를 지키는 사람.

어쩌면 아드보카트야말로 축구계에서 가장 낭만적인 사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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