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월드컵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4년 전 우리는 발전하는 대표팀을 봤다고 믿었다. 부족한 점은 있었지만 적어도 어디를 향해 가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불과 4년 만에 한국 축구는 허망할 정도로 제자리도 지키지 못했다.
만약 전쟁에서, 경제에서, 외교 무대에서 이런 참담한 모습이었다면 어땠을까.
남아공전 0-1 패배는 아쉽지도 않았다.
그냥 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무엇을 하려는 팀인가.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황희찬, 황인범. 아시아에서는 좀처럼 한 팀에 모이기 어려운 선수들이다. 그런데 경기장에서는 하나의 팀으로 뛰지 못했다. 언제 압박하고, 어디를 공략하며, 어떤 방식으로 경기를 풀어갈 것인지 공통된 그림이 보이지 않았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는 빌드업이라는 분명한 철학이 있었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골키퍼부터 경기를 풀어가고, 공간을 만들어 전진하려는 의도는 분명했다.
그렇다면 2026년 한국 축구는 무엇을 하는 팀인가.
세계 축구는 공간을 만들고, 공간을 지우며, 유기적인 연계 플레이를 통해 진화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그 흐름과 따로 노는 듯했다. 선수들은 함께 움직이지 않았고, 패스는 연결되지 않았으며, 전술은 보이지 않았다.
0-1로 뒤진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부족한데도 공격에 무게를 싣는 결단은 없었다. 선수 교체도, 전술 변화도 상대를 흔들지 못했다.
지고 있는데도 너무나 태평했다.
무능한 행정과 리더십이 이런 결과까지 빚어내는 것일까.
그동안 한국 축구는 행운에 속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더 안타까운 것은 바로 옆에 일본이라는 교과서가 있었다는 점이다. 일본 축구는 20년 넘게 같은 철학을 다듬으며 조금씩 발전해 왔다. 월드컵에서도 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도 정작 배운 것이 무엇인지 묻게 된다.
조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스스로 토대를 허무는 데는 한 순간이면 충분하다. 이번 월드컵은 그 사실을 너무 잔인하게 보여줬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더 큰 실패는 왜 실패했는지조차 모르는 것이다. 이번 패배가 한국 축구를 처음부터 다시 세우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이 남아공전이 우리에게 주는 유일한 의미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