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2013년 회장에 취임했다. 그의 책 『축구의 시대』를 보면 “하루는 길지만 10년은 짧다”는 말이 나온다. 8인제 축구 도입과 골든 에이지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맞는 말이다. 축구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유소년 육성도, 지도자 교육도, 대표팀 철학도 10년 이상을 보고 쌓아야 한다.

하지만 조직의 신뢰와 절차도 함께 쌓았어야 했다.

좋은 제도 몇 개를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제도를 지탱하는 리더십이 공정해야 한다. 중요한 결정을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내리고, 실패했을 때 책임지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

한국 축구의 문제는 경기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더 깊은 곳에 리더십의 위기가 있다. 조직이 공정과 합리성의 기준을 잃으면, 좋은 선수들이 있어도 팀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가 그랬다.

당시 한국은 16강에 올랐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빌드업이라는 철학이 있었고, 무엇을 하려는 팀인지는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런데 4년 만에 축구 팬들이 32강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는 처지가 됐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과 실패, 이후 홍명보 감독 선임 논란을 거치며 한국 축구는 방향을 잃었다. 단순히 특정 감독의 능력을 따지기에 앞서 더 본질적인 질문이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어떤 기준과 절차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가.

협회장의 독선이 강해지고 제대로 된 절차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한국 축구 전체의 미래를 맡을 책임 있는 기관이 될 수 없다.

일본 축구와의 차이도 여기서 갈린다.

1990년대 일본은 한국 축구를 연구했다. 한국의 프로축구 출범이 경쟁력을 높였다고 판단했고, 1993년 J리그를 출범시켰다. 이후 백년구상, 2050년 월드컵 우승 목표, 재팬스 웨이까지 차례로 내놓았다.

중요한 것은 선언 자체가 아니다.

그 선언을 조직 전체가 공유하고, 오랜 시간 흔들림 없이 밀고 갔다는 점이다.

일본축구협회는 선수 출신, 지도자, 행정가, 리그 경영자가 각자의 전문성을 갖고 역할을 나눈다. 회장이 바뀌어도 큰 방향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축구를 아는 사람들이 행정을 배우고, 행정가들은 현장을 이해하려 한다.

감독은 그 축구 철학을 현장에서 구현하는 지휘관이다. 팀의 철학은 일본 축구 전체에서 유지된다.

정 회장은 월드컵 이후 사임을 표명했다.

한국 축구는 절차와 공정성, 그리고 리더십을 다시 세워야 한다.

일본이 30년 전에 했던 질문 앞에 한국은 다시 서야 한다.

우리는 어떤 축구를 할 것인가. 어떤 선수를 키울 것인가. 어떤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

하지만 회장 한 사람이 바뀐다고, 감독 한 사람이 바뀐다고 원하는 조직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한국 축구에는 어려운 문제를 전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행정가와 기술 전문가, 지도자, 리더들이 충분한가. 축구 철학을 토론하고, 서로 견제하며,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건강한 조직을 갖고 있는가.

한국 축구에서는 중요한 결정이 나올 때마다 학연과 지연을 둘러싼 파벌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실제보다 논란이 더 부풀려진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의심이 반복된다는 사실 자체가 조직에 대한 신뢰가 충분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신뢰가 없는 조직에서는 사람보다 관계가 먼저 보이고, 능력보다 배경이 먼저 의심받는다. 결국 모두가 손해를 본다.

리더십은 한 사람의 카리스마가 아니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 공정한 절차 속에서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시스템이다.

한국 축구는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가. 그리고 다시 세우기 위해 어떤 사람들이 필요한가. 공정과 합리성이 회복되지 않는 한, 경기장 위의 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Leave a comment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