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월드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한국 축구는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물론 두 사람이 지금 당장 협회장이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해설을 들어보면 느끼게 된다. 경기의 맥을 읽는 능력도 뛰어나고, 세계 축구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이해도 깊다.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세 차례 월드컵을 함께 뛰었고, 히딩크와 아드보카트를 비롯한 여러 외국인 지도자를 경험했다. 나란히 히딩크가 감독을 맡고 있던 PSV 에인트호번에서 유럽 생활을 시작해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이영표는 토트넘, 도르트문트에서 세계 축구를 몸으로 배웠다.
그런데 정작 그런 경험과 전문성은 한국 축구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2024년 홍명보 감독 선임 논란 당시 이영표의 인터뷰를 다시 찾아봤다.
그는 협회를 믿고 기다려보자고 말했던 자신이 팬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거의 울먹이며 이런 말을 남겼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 축구인들은 당분간 행정을 하면 안 된다. 조용히 사라져야 한다.”
한국 축구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왜 이런 말까지 했을까.
축구인들 스스로 보여준 행정의 한계에 대한 자성이었다.
당시 전력강화위원회는 감독 선임을 위해 10차례 회의를 열었다.
회의는 계속됐지만 의견은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내부 이야기는 밖으로 흘러나왔고, 위원들은 잇따라 사퇴했다. 기술적인 논의보다 절차 논란이 더 큰 뉴스가 됐다.
박주호의 사례가 상징적이다.
그는 전력강화위원이었지만 정작 홍명보 감독 선임 발표가 나는 과정조차 충분히 공유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당시 그가 추천했던 제시 마시는 이후 캐나다 대표팀을 맡아 월드컵에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박주호의 의견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배제됐는지 국민들이 납득할 만큼 설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10차례 회의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최고의 감독을 찾기 위한 숙의였는가. 아니면 모두가 참여했다는 절차를 남기기 위한 회의였는가. 어떤 꿍꿍이였는지 알기 어렵다.
이것이 ‘축구 카르텔’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카르텔은 모두가 한편이라는 뜻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기존의 구조는 바뀌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정몽규-홍명보 사태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기업인과 축구인이 서로의 장점을 발휘해서 한국 축구를 한 단계 끌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기묘하게 공생하는 구조다.
기업인은 “축구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했다”고 절차에 숨고, 축구인은 “협회의 결정이었다”고 회장 뒤로 숨는다.
그 결과 한국 축구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조직이 됐다.
2002년 월드컵 세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고 싶다.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값진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방송과 해설, 예능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이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다. 직업 선택은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국가적인 자산인 그들의 경험이 한국 축구의 시스템 안에서 축적되고 있는가. 지도자 교육과 기술 행정, 대표팀 운영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지금의 한국 축구는 그 질문 앞에서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이제는 행동해야 할 때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