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32강 진출의 경우의 수도 끝났고 한국은 탈락했다.

2년 전 감독 선임을 둘러싼 정몽규-홍명보 사태는 예고된 재앙이 현실이 되며 파국을 맞았다.

두 사람이 한국 축구에 대한 애정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깨끗하게 책임을 인정하고, 다시 일어서야 할 한국 축구의 앞길에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 한번 뼈 아픈 질문을 하게 된다. 왜 한국은 성공을 자산으로 만들지 못할까.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한국과 일본 축구를 비교하면 가장 큰 차이는 감독이 아니라 철학의 연속성이었다.

한국은 감독이 바뀔 때마다 축구가 달라졌다. 일본은 감독이 바뀌어도 축구는 흐름을 이어갔다.

일본도 감독은 여러 차례 바뀌었다. 트루시에, 지코, 자케로니, 할릴호지치, 모리야스까지 시대마다 다른 지도자가 있었다. 그러나 일본축구협회가 추구하는 큰 방향은 흔들리지 않았다. 1993년 J리그 출범 이후 백년구상, 2050년 월드컵 우승 목표, 재팬스 웨이로 이어지는 철학은 30년 넘게 유지됐다.

한국은 달랐다.

히딩크 이후 본프레레, 아드보카트, 베어벡, 허정무, 조광래, 최강희, 홍명보, 슈틸리케, 신태용, 벤투, 클린스만, 다시 홍명보까지.

감독이 바뀔 때마다 압박 축구, 역습 축구, 롱볼 축구, 빌드업 축구가 반복됐다. 대표팀은 늘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2002년 히딩크는 세계 수준의 압박과 체력, 조직력을 남겼다. 그리고 학연, 지연, 소통을 가로막는 선후배 문화 등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해법을 제시했다. 2022년 벤투는 빌드업이라는 분명한 방향을 제시했다.

하지만 두 번 모두 그 철학은 감독과 함께 사라졌다.

좋은 감독을 선임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좋은 감독이 남긴 철학을 시스템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것이 행정의 존재 이유이고, 축구협회라는 조직이 존재하는 이유다.

결국 한국은 2002년의 성공도, 2022년의 새로운 발견도 실력으로 바꾸는 데 실패했다.

한국 축구에 부족한 것은 좋은 감독 만이 아니다.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 한 감독이 남긴 철학을 다음 세대로 이어갈 조직, 그리고 인맥이나 지연, 학연보다 시스템이 먼저 작동하는 리더십이다.

한국 축구가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할 지점도 바로 그곳이다.

Leave a comment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