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지도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위대한 선수였다고 해서 훌륭한 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름값이 지도력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좋은 지도자는 누구에게, 무엇을 배웠고, 어떤 경험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만들어 왔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캐나다 돌풍을 이끄는 제시 마시(Jesse Marsch) 감독을 보면서 다시 그 질문을 떠올렸다.
북중미 월드컵 공동 개최국 캐나다는 이번 대회에서 사상 처음 조별리그를 통과한 데 이어 남아공을 꺾고 역시 사상 첫 16강 진출을 이뤄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월드컵 본선 첫 승조차 없던 나라가 이제는 세계 강호들이 경계하는 팀으로 변했다.
그 중심에는 미국 출신 지도자 제시 마시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는 한때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후보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당시 전력강화위원이던 박주호는 마시를 추천했지만, 일부 위원들은 “그가 누구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지금 돌아보면 씁쓸한 장면이다.
마시는 화려한 선수 출신이 아니었다. 프린스턴대에서 미국사를 전공했고, MLS에서 14시즌을 뛰었지만 미국 대표팀 출전은 단 두 경기뿐이었다.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그는 누구보다 배우기를 즐기는 지도자였다.
은퇴 후에는 틈만 나면 유럽으로 건너가 훈련장을 찾았다. 세계 최고의 지도자들은 어떻게 훈련하고 경기를 준비하는지 직접 보고 메모했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이런 과정을 ‘유학 프로그램(Study Abroad Program)’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운명을 바꾼 인물이 독일의 전술가 랄프 랑닉(Ralf Rangnick)이었다.
랑닉은 현대 독일 축구의 혁신가로 평가받는다. 오늘날 세계 축구의 표준이 된 하이프레싱과 빠른 전환 축구를 체계화했고, 레드불 그룹의 축구 철학을 구축했다. 위르겐 클롭과 토마스 투헬, 율리안 나겔스만 같은 명장들에게도 큰 영향을 준 ‘스승들의 스승’으로 불린다.
마시는 뉴욕 레드불스 감독 면접에서 처음 랑닉을 만났다. 두 사람은 압박을 언제 시작할 것인가, 공을 빼앗긴 뒤 첫 번째 행동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전환 상황에서 선수들은 얼마나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가를 놓고 면접이라기보다 토론에 가까운 대화를 나눴다. 마시는 훗날 “거의 논쟁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랑닉은 달랐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끝까지 토론을 이어가는 태도에서 지도자의 자질을 발견했다.
그렇게 마시는 레드불 축구의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잘츠부르크에서는 황희찬과 엘링 홀란, 도미니크 소보슬라이를 성장시키며 리그 2연패를 이끌었고, 이후 라이프치히와 리즈를 거치며 자신의 축구를 다듬었다.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하면서 그의 철학은 더욱 단단해졌다. 지금은 캐나다에서 그 결실을 맺고 있다.
그 철학은 사상 첫 월드컵 16강 진출을 확정한 순간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남아공전 종료 휘슬이 울린 뒤 마시는 선수들을 라커룸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그라운드 한가운데 원을 만들어 세운 뒤 직접 연설을 했다. 굳이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모은 이유가 있었다. 그 감동을 선수들끼리만 나누지 않고 경기장을 찾은 팬들, 그리고 TV를 통해 지켜보는 캐나다 국민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선수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You guys are Canadian heroes! Canadian heroes for the future children of this country who play this sport. This sport has a big future because of you guys. You should be so proud of who you are. You should be so proud of this game.”
“여러분은 캐나다의 영웅입니다. 앞으로 이 나라에서 축구를 할 아이들에게도 영웅입니다. 여러분 덕분에 캐나다 축구의 미래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십시오. 그리고 이 경기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십시오.”
좋은 지도자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최고의 현장에서 배우고, 자신의 철학을 끊임없이 검증하며, 성공과 실패를 모두 자양분으로 삼는 과정 속에서 탄생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긴 경기보다, 자신이 남길 문화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한때 아쉽게 한국 축구와도 스쳐 지나갔던 제시 마시는, 좋은 감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사례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