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과 필드를 동시에 지배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잔디의 결을 읽는 감각과 시뮬레이터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뇌 구조는 묘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KPGA 투어에 스크린과 필드를 오가는 선구자들이 있었듯, KLPGA 투어에서는 홍현지(24)가 그 바통을 이어받아 자신만의 확고한 길을 개척하고 있다. 종종 투어 팬들 사이에서 ‘여자 김홍택’이라는 기분 좋은 수식어로 불리기도 하지만, 그녀의 진짜 목표는 ‘제1의 홍현지’가 되는 것이다.

그녀는 지난달 8일 막을 내린 2026 롯데렌터카 WGTOUR 2차 대회에서 무려 25언더파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스크린에서 다시 한번 증명한 이 짜릿한 손맛을, 그녀는 이제 정규 투어 필드 위로 고스란히 가져오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지고 있다.

스크린을 평정한 ‘압도적 여제’, 무결점 통산 14승의 금자탑

‘스크린 여왕’이라는 타이틀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홍현지가 GTOUR 무대에서 쌓아 올린 기록은 그야말로 경이로운 수준이다.

2020년 GTOUR에 데뷔한 그녀는, 이듬해인 2021년 롯데렌터카 GTOUR 4차 대회에서 첫 승을 신고하며 여제의 탄생을 알렸다. 이후 거침없는 행보로 2022년과 2023년에 각각 3승씩을 거두었고, 2024년에도 2승을 추가했다. 특히 2025년에는 혼성 대회인 믹스드(MIXED) 대회를 포함해 무려 4승을 쓸어 담았고, 2026년 시즌 시작과 동시에 2차 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20대 중반의 나이에 벌써 GTOUR 통산 14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쓰디쓴 2년 차 징크스, 그리고 시드전을 통한 각성

이토록 스크린에서는 무적에 가까운 홍현지지만, 필드 위 정규투어의 벽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루키 시즌이었던 2024년 29개 대회에 출전해 2억 4천만 원이 넘는 상금을 수확, 신인상 포인트 3위에 오르며 성공적인 연착륙을 하는 듯했다.

하지만 2025년 시즌, 이른바 ‘2년 차 징크스’가 발목을 잡았다. 29개 대회에 나섰지만 상금은 반토막이 났고, 결국 시즌 막바지 정규투어 시드순위전 본선이라는 살얼음판까지 내몰려야 했다. 그러나 시련은 선수를 단련시키는 법. 홍현지는 시드순위전에서 최종 12위에 오르며 2026시즌 정규투어 티켓을 다시 넉넉하게 거머쥐었다.

“지난해는 준비했던 걸 전혀 보여주지 못해 아쉬움이 가득한 시즌이었다. 하지만 시드순위전을 다녀오며 나 자신을 더 돌아보고 채찍질할 수 있었다. 배움이 참 많았던 해다. 2026년 시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얻은 게 많은 만큼, 올해 목표는 정말 우승을 위해 달리고 싶다. 시합 하나하나 최선을 다하고 후회 없는 경기를 할 것이다.”

해외 대신 국내를 택한 동계 훈련, 핵심은 ‘체력과 실전 감각’

대부분의 투어 프로들이 따뜻한 해외로 전지훈련을 떠나는 겨울, 그녀는 묵묵히 국내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2025시즌을 겪으며 뼈저리게 느낀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작년 시즌을 마무리하며 체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해외 대신 국내에서 체력 훈련 위주로 준비하고 있다. 중간중간 지투어(GTOUR) 시합도 병행하면서 실전 감각을 잃지 않도록 세심하게 챙기는 중이다.”

그녀의 계획은 완벽하게 적중했다. 지난달 WGTOUR 우승으로 샷 감각을 실전에서 완벽히 점검했다. 스크린에서 끌어올린 자신감을 체력 훈련으로 다진 몸에 얹어 필드 위에서 폭발시키겠다는 영리한 계산이다.

대구 팬미팅으로 충전한 에너지, 그리고 롤모델 신지애

홍현지는 스스로의 무기를 ‘단단한 멘탈’과 ‘긍정적인 마인드’로 꼽는다. 팬들이 열광하는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은 타석에서의 무서운 집중력과 홀아웃 이후의 발랄함이 교차하는 ‘반전’에 있다.

이러한 특유의 매력 덕분에, 지난 3월 1일에는 대구에서 그녀의 공식 팬클럽 ‘현지人’ 창단식을 겸한 뜻깊은 팬미팅이 열렸다. 그녀는 먼 곳까지 찾아와 준 팬들과 함께 스크린 골프도 치고 식사도 나누며 잊지 못할 긍정 에너지를 충전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팬분들 덕분에 정말 큰 에너지를 얻는다. 앞으로 필드 위에서 더 좋은 성적과 멋진 모습으로 꼭 보답하겠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그녀가 마음속 깊이 품고 있는 투어 롤모델은 ‘파이널 퀸’ 신지애다.

“현역으로 오랫동안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시는 신지애 프로님의 철저한 자기관리, 중요한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 너무 멋있다. 나 역시 가까운 미래에는 정규투어 우승을 이루고, 나아가 10년 이상 꾸준히 활약해야 가입할 수 있는 ‘K-10 클럽’에 이름을 올리고 싶다.”

“누군가의 수식어가 아닌, ‘제1의 홍현지’가 되겠다”

팬들이 붙여준 애칭에 대해 그녀는 깊은 감사함을 표하면서도 프로로서의 단단한 포부를 잊지 않았다.

“‘여자 김홍택’이라는 별명은 스크린과 필드 둘 다 열심히 하는 내 모습을 예쁘게 봐주신 결과라 영광이고 감사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대체 불가한 ‘제1의 홍현지’로 각인되고 싶다. 단순히 두 무대를 병행만 하는 게 아니라, 두 곳 모두에서 다 ‘진짜’가 되고 싶은 욕심이 크다.”

홍현지의 2026년은 이미 뜨겁게 시작되었다. 중계 카메라 앞을 즐길 줄 아는 특유의 스타성은 경기장 안팎에서 빛을 발할 준비를 마쳤다.

“지난달 WGTOUR 25언더파 우승 때의 짜릿한 감각을 그대로 필드까지 가져가고 싶다. 필드 위에서는 묵묵하고 단단하게 치고, 돌아서면 활짝 웃는 반전 매력을 기대해 달라. ‘역시 홍현지 나오면 중계 볼 맛 난다!’라는 소리 듣는 스타 선수가 될 수 있게 진짜 열심히 하겠다.”

누군가의 이름표를 떼고 오롯이 ‘제1의 홍현지’로 날아오를 채비를 마쳤다. 통산 14승 스크린 여제의 호쾌한 샷이, 올 시즌 KLPGA 투어 그린 위에서 어떤 통쾌한 파열음을 만들어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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