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일 HSBC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챔피언들의 산책(The Walk of Champions – Lydia Ko and Inbee Park)’ 영상에서 여자 골프의 두 살아있는 전설, 리디아 고와 박인비가 만나 깊은 울림을 주는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 영상은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싱가포르 대회에 출전한 리디아 고와 은퇴 후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는 박인비가 재회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필드 위에서 가장 치열하게 우승을 다투던 두 선수는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며, 서로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과 투어 생활의 고충,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한 선배로서의 책임감에 대해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과거의 기억과 서로를 향한 아낌없는 찬사 대화의 시작은 두 사람의 잊을 수 없는 과거 경기력에 대한 회상이었다. 리디아 고는 싱가포르 대회가 자신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어느덧 이 대회에 12번째 출전하게 된 리디아 고는, 과거 박인비가 우승할 당시 챔피언조에서 함께 경기했던 2015년의 마지막 라운드를 떠올렸다. 당시 투어 2년 차에 불과했던 리디아 고는 대선배인 박인비와 함께 플레이하며 자신이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압박감마저 느꼈다고 고백했다. 특히 그녀는 여전히 박인비의 차분한 태도와 놀라운 퍼팅 실력에 경외감을 느낀다며, “내가 박인비처럼 퍼팅을 했다면 더 많이 우승했을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한, 그 시절의 경험을 통해 이처럼 꾸준하고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깨달았으며, 17세의 어린 나이였던 자신에게 그 시간은 너무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이에 박인비 역시 어린 시절의 리디아 고를 처음 보았을 때의 강렬했던 인상을 전했다. 박인비는 리디아 고가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플레이 스타일이 매우 성숙했으며, 뛰어난 퍼팅 능력과 침착한 태도 등 자신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박인비는 당시 리디아 고를 보며 “이 선수는 정말 재능이 뛰어나고, 앞으로 여자 골프의 차세대를 이끌어갈 주역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고, 그 생각은 정확히 적중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아가 리디아 고와 경쟁자로 함께할 수 있어서 늘 훌륭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정상의 자리, 뼈아픈 추락, 그리고 화려한 부활에 대한 공감 두 선수의 대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은 끝없는 영광 뒤에 숨겨진 깊은 슬럼프와, 이를 극복해 낸 서로의 과정에 대한 깊은 공감이었다. 리디아 고는 자신의 커리어 전반에 걸쳐 박인비로부터 큰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박인비가 아주 어린 나이에 US오픈에서 우승하며 정상을 차지한 후 뼈아픈 부진의 시기를 겪었지만, 다시 완벽하게 부활하여 6개의 메이저 대회를 더 우승하며 투어를 지배한 점을 깊이 존경한다고 말했다.

리디아 고 역시 이른 나이에 세계 정상을 차지한 후 심각한 슬럼프를 겪으며 추락과 부활을 경험했기에, 박인비의 극복 과정이 단순한 경기력 이상의 놀라운 성취임을 누구보다 뼛속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리디아 고는 정상에서 바닥으로, 그리고 다시 정상으로 올라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박인비의 끈기에 찬사를 보냈다. 이에 박인비는 “너 또한 커리어에서 똑같은 과정을 겪었고, 내가 직접 그 길을 지나왔기에 그 시간을 버텨내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잘 안다”며 깊은 위로를 건넸다. 박인비는 리디아 고가 그 힘들었던 시기를 훌륭하게 이겨낸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며 따뜻하게 격려했고, 리디아 고는 이 말에 큰 감동을 받았다.

디펜딩 챔피언의 압박감과 영광의 순간 화제는 리디아 고가 전년도에 우승을 차지했던 싱가포르 대회의 마지막 순간으로 이어졌다. 리디아 고는 18번 홀을 걸어 내려올 때의 감정을 묻는 박인비의 질문에, 여전히 긴장 상태였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선두를 달리고 있었지만, 전년도에 공을 빠뜨렸던 똑같은 벙커에 또다시 공을 빠뜨렸기 때문이다. 리디아 고는 골프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스포츠이기에, 설령 우승을 하더라도 보기(Bogey)로 경기를 찝찝하게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당시의 절박했던 심정을 전했다. 다행히 그녀는 훌륭한 업앤다운(Up-and-down)으로 파(Par)를 기록하며 기분 좋게 대회를 마쳤고, 보기 없이 경기를 끝냈다는 사실에 큰 안도감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레전드의 책임감과 세대교체, 그리고 이어지는 유산 대화의 말미, 리디아 고는 박인비에게 한국을 넘어 아시아와 전 세계 수많은 선수의 롤모델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소회를 물었다. 박인비는 누군가의 롤모델, 특히 어린 후배 선수들의 롤모델이 되는 것은 자신이 항상 꿈꿔왔던 일이며 그 자리에 있는 것에 대해 매우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그녀는 자신이 과거 윗세대 선배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성장했던 것처럼, 이제는 그 훌륭한 유산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역설했다. 다음 세대가 곧 골프의 미래이며, 자신이 여자 골프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행복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울러 박인비는 “이제는 네가 수많은 어린 골퍼들에게 영감을 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리디아 고가 이어갈 새로운 레전드로서의 발걸음을 축복했다. 대화는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세상에 박인비는 단 한 명뿐이다”, “리디아 고 역시 단 한 명뿐이다”라는 진심 어린 헌사를 주고받으며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이번 ‘챔피언들의 산책’에서 두 레전드가 나눈 대화는 단순히 과거의 영광을 나누는 것을 넘어선다. 10대 시절부터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정상의 무게를 견뎌내야 했던 두 챔피언이, 슬럼프라는 캄캄한 터널을 지나 다시 빛을 보기까지의 회복력을 생생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선한 영향력과, 서로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이끌어주는 두 전설의 아름다운 동행은 수많은 골프 팬들과 후배 선수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진한 감동의 메시지를 선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