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페리 투어라는 큰 산을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오니 더 거대하고 새로운 벽이 눈앞에 서 있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그 벽을 넘어서는 과정조차 설렙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마침내 ‘꿈의 무대’에 입성한 ‘불곰’ 이승택(30)이 드디어 PGA(미국프로골프) 투어 데뷔전을 치른다. 16일(한국시각)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와이알레이 컨트리클럽에서 개막하는 PGA 투어 소니 오픈을 앞두고, 이승택은 15일 국내 취재진과의 화상 인터뷰를 통해 데뷔전을 앞둔 비장한 각오를 전했다.

■ “꿈에 그리던 조던 스피스와의 라운드… 어안이 벙벙했다”
이승택에게 이번 소니 오픈은 단순한 데뷔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TV로만 보던 세계적인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현실이 그에게는 매 순간 놀라움의 연속이다. 특히 지난 14일 진행된 공식 연습 라운드는 그에게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선물했다. 평소 로리 매킬로이, 스코티 셰플러와 함께 동경의 대상으로 꼽았던 조던 스피스(미국)와 동반 플레이를 하게 된 것이다.
이승택은 “스피스는 김시우 선수와 친분이 두터워 한국 선수들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다”며 “세계적인 스타가 연습 라운드 도중 나에게 먼저 다가와 ‘이런 샷은 참 좋다’고 칭찬해주고, ‘이 상황에서 어프로치 샷은 이렇게 한번 시도해 보라’며 구체적인 기술 조언까지 건넸다”고 회상했다. 이어 “꿈꿔왔던 선수에게 직접 레슨을 받는 듯한 기분이라 너무 신기하고 어안이 벙벙했다”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 “PGA 투어의 높은 벽, 고탄도 아이언 샷으로 뚫겠다”
이승택은 현지 코스를 경험한 소감에 대해 “확실히 PGA 투어는 규모부터 달랐고 코스 난이도도 상상 이상”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러프가 굉장히 깊고 넓게 분포되어 있어 자칫 잘못 치면 손목 부상을 입을 수 있을 정도이고, 페어웨이는 좁다. 게다가 그린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단단하고 빨라서 공을 세우기가 어렵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2부 투어인 콘페리 투어를 통과하며 자신감을 얻었지만, 1부 투어는 또 다른 차원의 ‘벽’임을 실감한 것이다.
이승택이 내세운 생존 전략은 ‘정교함’과 ‘탄도’다. 그는 “서양 선수들에 비해 체격 조건이 작고 경험도 부족하다. 힘으로 맞붙기보다는 정밀한 아이언 샷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단단한 그린 공략을 위해 비시즌 동안 ‘고탄도 아이언 샷’을 집중적으로 연마했다. 그는 “공을 높이 띄워 그린에 부드럽게 안착시키는 샷을 완성하기 위해 쉬는 기간 내내 매달렸다. 이 무기가 실전에서 통할 것이라 믿는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 목표는 ‘생존’… 아버지 사진 보며 외로움 이겨내
이승택의 올 시즌 최우선 목표는 화려한 우승보다는 냉철한 ‘생존’이다. 내년 시즌 풀타임 시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페덱스컵 랭킹 100위 안에 들어야 한다. 루키 신분인 탓에 상금과 포인트가 많이 걸린 ‘시그니처 대회’ 출전권이 없는 그는, 일반 대회에 최대한 많이 출전해 포인트를 쌓는 ‘다작(多作) 전략’을 택했다.
그는 “포인트 랭킹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출전 가능한 모든 대회에 나가야 할 것 같다”며 “장기 레이스인 만큼 체력 관리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타국에서의 외로운 투어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은 ‘가족’이다. 이승택은 “그동안 골프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힘들 때마다 아버지에게 의지하며 버텼다”고 고백했다. 지금도 그의 휴대전화 뒷면에는 아버지의 사진이 붙어 있다. 그는 “어려운 순간마다 아버지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며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하며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증명해 보이고 싶다. 시즌이 끝났을 때 많은 것을 얻어가는, 후회 없는 1년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