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후보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 하와이에서, 62세 노장이 살아 남았다.

젊음과 파워가 지배하는 현대 골프의 정글, PGA 투어에서 백전노장 비제이 싱(62, 피지)이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렸다. 2026년 소니오픈 2라운드가 열린 미국 하와이 와이알레이 컨트리클럽. 우승 후보로 꼽히던 30대, 40대의 쟁쟁한 현역 스타들이 줄줄이 짐을 싸는 사이, 올해 만 62세가 된 싱은 당당히 컷을 통과하며 주말 라운드 진출을 확정 지었다.

■ “클래스는 영원하다” 현역 강호들을 압도한 62세의 샷

싱은 2라운드에서 버디와 보기를 섞어 이븐파 70타를 기록, 중간 합계 2언더파 138타로 컷 통과 기준선(1언더파)을 넘었다. 1라운드 16번 홀(8.8m)과 2라운드 4번 홀(9.4m)에서 보여준 장거리 버디 퍼트를 포함해 전성기 시절 ‘흑진주’라 불리며 필드를 호령하던 감각을 그대로 보였다.

PGA 투어 통산 6승의 토니 피나우(36)는 아이언 샷 난조 속에 합계 6오버파로 무너졌고, 지난 시즌 준우승자이자 우승 후보였던 키건 브래들리(39)마저 막판 더블 보기에 발목이 잡혀 합계 이븐파로 탈락했다. 메이저 2승(통산 6승)을 거둔 콜린 모리카와(29)도 컷을 통과하지 못했다._비거리가 줄고 체력이 떨어지는 자연의 섭리 앞에서도, 싱은 정교함과 노련미로 무장해 젊은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정글에서 살아남았다. 2021년 이후 정규 투어 두 번째 컷 통과이자, 60대 선수가 정규 투어에서 경쟁력을 입증한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 편안한 ‘시니어’를 거부하고 ‘가시밭길’을 택한 이유

사실 비제이 싱은 굳이 이 힘든 길을 갈 필요가 없다. 그는 50세 이상이 출전하는 PGA 챔피언스 투어(시니어 투어)의 절대 강자 중 한 명이다. 컷 탈락 걱정도 없고, 카트를 타고 이동할 수도 있으며, 코스 세팅도 비교적 수월한 시니어 무대에서 편안하게 우승 트로피를 수집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가 2026년,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에 다시 정규 투어 ‘풀 타임’ 복귀를 선언한 배경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골프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연습 중독자(Practice Junkie)’다. 연습량 많기로 손꼽히는 최경주가 인정하는 거의 유일한 넘사벽이다. 해가 질 때까지 드라이빙 레인지에 남아 공을 친다. 그에게 골프는 직업을 넘어선 삶 그 자체이며, 자신의 기량이 세계 최고 수준의 코스에서 통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순수 경쟁자(Pure Competitor)’의 본능이 여전히 끓어오르고 있다.

‘생물학적 한계’와 ‘마지막 기회(Last Dance)’에 대한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관리가 철저한 싱이라도 60대 중반을 넘어서면 7400야드를 넘나드는 괴물 같은 PGA 투어 코스를 공략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그는 자신의 신체가 버텨줄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의 경쟁력이 남아있는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도전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생애 획득 상금 톱 50’ : 땀으로 획득한 특권

비제이 싱의 이번 복귀를 가능케 한 제도적 장치는 PGA 투어의 ‘생애 획득 상금 면제(Career Money Exemption)’ 규정이다. 이는 투어의 흥행과 발전에 이바지한 레전드들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명예훈장과도 같다.

규정에 따르면 선수는 평생 한 번, ‘생애 상금 순위 50위 이내’일 때 1년씩 정규 투어 시드권을 행사할 수 있다. 비제이 싱은 2025년 시즌 종료 기준으로 타이거 우즈, 필 미켈슨, 로리 매킬로이 등에 이어 역대 누적 상금 순위 8위(약 7128만 달러, 한화 약 950억 원)을 유지하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싱은 상위 50위 카테고리 중에서도 ‘상위 25위 이내(Top 25 All-Time)’ 이내에 속해 메이저 대회나 소수의 특급 대회를 제외한 거의 모든 풀 필드(Full-Field) 대회에 1년간 자유롭게 출전할 수 있다.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금자탑을 이용해, 은퇴 대신 ‘가장 화려하고 치열한 피날레’를 준비한 것이다.

■ 위대한 도전은 계속된다

많은 이들이 비제이 싱의 복귀를 ‘이벤트성’이나 ‘추억 팔이’ 정도로 예상했다. 하지만 소니오픈에서 그가 보여준 골프는 치열한 생존 게임이었다. 그는 과거의 영광에 기대지 않았고, 오직 현재의 실력으로 컷을 통과했다.

주말 라운드에서 싱이 우승 경쟁에 뛰어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지 모른다. 체력적인 부담은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가중될 것이다. 하지만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 62세의 나이에 300야드를 날리는 20대들과 나란히 티 박스에 서서, 한 타 한 타 집중하는 그의 모습 자체가 골프라는 스포츠가 가진 ‘도전’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습이 곧 휴식”이라고 말하는 이 괴짜 레전드의 2026년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하와이의 바람을 가른 그의 샷은 전 세계 골프 팬들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열정에는 유통기한이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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