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시즌 LPGA 투어의 화려한 막을 올린 ‘힐튼 그랜드 베케이션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가 예상치 못한 북극 한파에 따른 파행 운영 끝에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 여자 골프의 차세대 주자로 기대를 모은 ‘돌격대장’ 황유민은 데뷔전 최종 라운드에서 불운에 시달렸지만, 끝내 톱5에 이름을 올리며 전 세계 골프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 ‘북극 한파’에 꽁꽁 얼어붙은 레이크 노나…결국 54홀 축소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레이크 노나 골프 앤드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이번 대회는 대회 3일째인 2월 1일(한국시각)에 이어 최종일인 2일까지도 영하권의 기록적인 추위와 강한 바람이 몰아치며 정상적인 경기 진행이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했다. 전날부터 경기장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며 그린 위 공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정도의 저온 현상이 지속되자, 대회 본부는 긴급 논의 끝에 당초 72홀(4라운드)로 예정되었던 경기를 54홀(3라운드)로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LPGA 경기 위원회는 “기온이 경기 가능 수준인 최고점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려 전날 미처 마치지 못한 3라운드 잔여 경기를 치르기로 했다”며 “최종일 역시 기록적인 저온이 예보되어 있어 72홀 완주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로 인해 사실상 3라운드가 최종 라운드가 되면서 선수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 17번 홀의 비극…강풍과 추위가 만든 ‘트리플 보기’
황유민에게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단연 17번 홀(파3)이었다. 전날 16번 홀까지 8언더파를 기록하며 선두권을 위협하던 황유민은 전날 17번 홀에서 파 퍼트를 시도한 공이 강풍의 영향을 받아 그린 위에 멈추지 않고 그린 바깥 러프까지 굴러갔다. 이를 가까이서 지켜본 경기 위원이 곧바로 경기 위원회에 연락을 취하면서 전체 경기가 중단됐다. 이날 속개된 경기에서 황유민은 그린 바깥 러프에서 어프로치 샷을 시도했으나, 얼어붙은 지면과 매서운 바람 탓에 거리 조절에 실패하며 샷이 다소 길게 떨어졌다. 결국 그린 위에서 투 퍼트(2-Putt)를 더하며 해당 홀에서만 3타를 잃는 ‘트리플 보기’, 이른바 ‘양파’를 기록하고 말았다.
파3 홀에서 기록한 트리플 보기는 황유민의 기세에 찬물을 끼얹었다. 8언더파로 공동 3위까지 치고 올라갔던 성적은 순식간에 5언더파로 내려앉았다. 데뷔전이라는 압박감 속에서 마주한 기상 악화와 불운이 겹친 아쉬운 결과였다.
◇ ‘준비된 루키’ 황유민, 시련 딛고 공동 5위로 성공적 안착
비록 17번 홀에서의 실수가 컸지만, 황유민이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전반적인 경기력은 ‘신인왕 0순위’다웠다. 합계 5언더파 211타를 기록하며 공동 5위로 대회를 마무리한 황유민은 지난 2년간 LPGA투어 챔피언들만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도 돋보이는 성적을 거두었다.
대회 초반 황유민은 거침이 없었다. 2라운드에서 이글 1개와 버디 6개를 쓸어 담으며 5언더파 67타를 기록, 순위를 단숨에 공동 5위까지 끌어올렸다. 특히 2라운드 18번 홀(파4)에서 보여준 환상적인 샷 이글은 현지 중계진조차 감탄하게 만든 이번 대회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3라운드에서 겪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하며 톱5를 지켜낸 것은 그녀의 멘탈이 이미 투어 수준에 도달했음을 증명한다.
◇ 넬리 코다의 부활과 양희영의 노련미
마지막 날 경기가 열리지 않으면서 세계 랭킹 2위 넬리 코다(미국)는 행운의 우승컵을 차지했다. 코다는 전날 3라운드에서만 8언더파 64타를 몰아치는 신들린 샷 감각을 뽐내며 최종 합계 13언더파로 정상에 섰다. 이로써 코다는 2004년 11월 이후 약 14개월간 이어진 무관의 설움을 털어내고 시즌 첫 승이자 통산 16승째를 달성하며 강자의 면모를 과시했다.
한국 선수 중 맏언니인 양희영의 활약도 눈부셨다. 양희영은 마지막까지 코다를 추격하며 최종 합계 10언더파를 기록, 단독 2위로 경기를 마쳤다. 대회 축소로 인해 역전의 기회가 단축된 것이 아쉬울 정도로 안정적인 샷감을 선보이며 2026시즌의 밝은 전망을 비췄다.
◇ 쉼 없이 이어지는 여정…다음은 아시아 시리즈
개막전에서 한국 선수들은 양희영(2위), 황유민(공동 5위) 등 상위권에 고르게 포진하며 ‘K-골프’의 힘을 보여주었다. 특히 비회원 우승으로 당당히 입성해 첫 단추를 잘 꿰맨 황유민의 등장은 한국 여자 골프 팬들에게 큰 위안이 되고 있다.
LPGA 투어는 이제 따뜻한 아시아로 자리를 옮겨 ‘아시안 스윙’을 시작한다. 다음 대회는 2월 19일부터 태국 촌부리의 시암 컨트리클럽에서 열리는 ‘혼다 LPGA 타일랜드’다. 이어 싱가포르의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2월 26일), 중국의 ‘블루베이 LPGA’(3월 5일)가 차례로 이어진다.
비정상적인 추위와 17번 홀의 악재 속에서도 황유민이 보여준 투혼은 우승만큼이나 값졌다. 첫 경기에서 혹독한 교훈을 얻은 황유민이 다가오는 아시아 시리즈에서 어떤 반전 드라마를 써 내려갈지 전 세계 골프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